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이것’ 고려하지 못했다
아이가 ‘작은 어른’이 아니듯, 여성은 ‘염색체만 다른 남성’이 아니다. 의학 연구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배제됐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 그 사이 전형적인 질병 및 증상이 남성을 기준으로 맞춰졌고 여성들은 이례적인 환자가 됐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주목해 더 깊은 의학적 지식을 쫓는 ‘성차의학’은 기준 밖에 있던 인류의 절반을 다시 의과학의 영역으로 끌어 온다. 지난 4월 국내 첫 성차의학연구소 개소를 계기로 한국 성차의학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2021년 2월 19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CDC가 2020년 12월 14일부터 2021년 1월 18일까지 약 한 달간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미국인 1370만 명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백신 부작용을 신고한 사람 중 79.1%가 여성이었다.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가 발현됐던 66명 중 63명이 여성이었다.
백신을 맞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부작용을 호소하는 것은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전 세계에서 유행한 신종 인플루엔자A(신종플루) 백신의 경우도, 이상 반응을 신고한 여성이 남성보다 4배 더 많았다.
같은 백신을 맞고도 남녀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성호르몬이 서로 다른 항체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면역세포의 항체 반응을 높이는 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항체 반응을 억제한다.
● 의학 연구, 정말 ‘과학적’인가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예.” “아니요.”
2021년 8월 스위스 여성 두뇌 프로젝트(WBP) 연구팀은 모더나, 화이자, 얀센, 아스트라제네카가 긴급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유럽 식품의약품기구(EMA), 캐나다 보건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총 3개 기관에 제출했던 임상 시험 3상 보고서를 분석했다. (doi: 10.1016/j.cct.2022.106700)
연구팀은 당시 4개의 백신이 각 기관의 기준에 맞춰 성별에 따른 안전성을 분석했는지를 살펴봤다. 결과는 11개의 분석 항목 중 9개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4개 백신이 3개 기관에 각각 제출한 보고서는 총 12개지만 분석 당시 아스트라제네카가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에 총 11개다.)
성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백신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 알려져 있음에도 개발 속도와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성별의 차이를 묵인한 것이다.
의학은 우리 몸에 대해 알고자 할 때 가설을 세우고 연구와 시험을 통해 이를 확인한다. 과학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의학은 오랫동안 ‘남자의 몸에 적용되는 원칙이라면 여자의 몸에도 적용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었다.
이 전제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 규정과 함께 관례화되면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규정이 여성을 의학 연구에서 지웠다. 효율적인 연구 및 실험을 위해 남성 중심 의학 연구가 발달했다.
1957년, 독일 제약사 그뤼넨탈에서 만든 신경안정제 ‘탈리도마이드’는 입덧 완화제로 큰 인기를 끌며 50여 개국에서 판매됐다. 상황은 3년 뒤 달라졌다. 1960년부터 1961년 사이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들이 팔, 다리가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기형아를 출산했다. 심장이나 눈, 소화기가 손상된 아기들도 있었다. 그 수는 1만 명이 넘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의약품 연구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대한 경각을 불러일으켰다. 1962년 미국은 법을 개정해 안정성뿐만 아니라 유효성까지 입증해야 신약 허가를 내릴 수 있게 했고 임상시험승인 제도를 도입해 제약회사들이 임상시험계획서를 제출하게끔 했다. 제약회사들은 유효성 입증을 위해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시행해야 했다.
1974년에는 연구에 실험 대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임신부와 가임기 여성은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됐다. 1977년 FDA는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자는 임상시험에서 제외하라는 지침도 발표했다.
규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의학 연구도 발달했다. 의학자들은 월경에 따른 여성들의 호르몬 변화가 임상 시험에서의 변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변수를 여성 시험 참여자마다 파악하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그 결과 의학자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실험 단계에서도 ‘여성’을 배제하는 것을 택했다. 남성을 표준으로 하는 의학 연구는 명확한 결과가 쉽게 나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 연구되지 않은 몸, ‘이례적인 증상’이네요
교육받기 위해 남자 행세를 하는 유대인 여성 ‘옌틀’이 등장하는 영화 ‘옌틀’이 1983년 개봉한 뒤 ‘옌틀 증후군(Yentl syndrome)’이란 단어가 생겼다. 많은 의학 연구가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질병이나 증상이 남성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 오진되거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심근경색의 대표적인 증상은 심한 흉통과 왼팔 통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성은 심장발작을 일으키기 전 심한 흉통보다 비교적 덜 위험해 보이는 ‘가슴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또 메스꺼움이나 숨 가쁨, 소화불량과 같은 증상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여성이 심장발작을 겪은 뒤 사망할 가능성은 남성보다 최대 3배나 높다. 남성 모델에 맞춰진 심장병 연구 안에서 앞선 증상을 나열한 여성들이 빠른 처치를 받기 힘든 탓이다.
심장에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갔을 때 오진을 받을 가능성은 남성보다 50% 더 높다. 영국 리즈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2017년 12월, 미국심장협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여성은 의사와 처음 만났을 때 남성과 동일한 진단 검사를 받을 가능성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만약 여성이 현재 심혈관 환자에게 권장되는 모든 치료를 받는다면 여성 심혈관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doi: 10.1161/JAHA.117.007123)
한국에서 급성심근경색을 진단받고 치료받는 과정도 남녀 간 차이가 있다. 2023년 3월 박성미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은 심장혈관을 관찰하는 관상동맥 조영술의 시행 여부가 성별에 따라 1.5배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98-023-31014-y)
박성미 교수팀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급성심근경색을 진단받은 63만 3000여 명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급성심근경색을 진단받은 남성 환자는 63.2%가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했으나 여성 환자는 39.8%만 검사의 대상자가 됐다. 반면 시술의 경우 85.8%의 남성 환자와 77.5%의 여성 환자에게 시행됐다.
지난 7월 고려대 안암병원 의학 도서관에서 만난 박 교수는 “관상동맥 조영술을 해야하지만 스텐트와 같은 시술이 들어간다”며 “혈관 관찰 검사에서 시술이 필요한 비율이 남성과 여성에게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은 데이터를 분석한 5년 동안 관상동맥 조영술을 받지 못한 여성 환자 60% 중 분명 누군가가 시술을 통해 호전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편향적인 연구는 여성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골다공증은 주로 폐경 후 여성들이 걸리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은 이례적인 골다공증 환자로 취급받는다. 영국 셰필드대 연구팀은 2022년 3월 국제학술지 ‘랜싯’에 남성이 여성보다 골다공증성 고관절 골절로 입원해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 10.1016/S2213-8587(22)00012-2)
연구팀은 “남성 골다공증이 흔하지만 의사들이 간과하고 있다”며 “남성 골다공증 진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내 최초 ‘성차의학’ 연구소 문 열다
2023년 4월 분당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의 성차의학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를 필두로 총 33명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연구소에 함께 했다. 2001년에 독일 샤리테 병원의 의학 젠더 연구소(GiM)가, 2013년에 미국 스탠퍼드대 여성 건강과 성차의학 센터(WHSDM)가 문을 연 것에 비교하면 한국 최초의 성차의학연구소는 분명 조금 늦게 첫걸음을 뗐다.
7월 5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아직 성차의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의사들도 많다”고 말한다. ‘Sex-Gender specific medicine’이라고 풀어 말해야 그제야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국내에 성차의학이란 분야가 직접적으로 소개된 것은 고작 10년 전이다.
론다 쉬빙어 스탠퍼드대 과학사학과 교수는 2005년 ‘젠더 혁신(Gendered innovations)’이란 개념을 최초로 주창했다. 과학이 편향적임을 인정하고 성과 젠더를 하나의 분석 도구로 활용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자동차 안전벨트가 남자들의 체형에 맞춰 설계돼, 여성의 경우 안전벨트를 매고도 부상을 당할 위험이 남성보다 47%나 더 높다는 연구는 젠더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doi: 10.2105/AJPH.2011.300275, doi: 10.1080/15389588.2019.1630825)
2014년 11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여성과총)는 쉬빙어 교수를 초청해 젠더 혁신 워크숍을 개최했다. 성미경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워크숍에서 대장암 발표를 했는데 당시 한국여성과총 이사였던 김 교수는 “성 교수의 발표를 임상적으로 돕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성차의학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은 가려져 있던 의학 지식의 경계를 넓히는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뒤이어 2016년 한국여성과총 산하에 젠더혁신연구센터(현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설립되면서 한국에도 본격적인 성차의학 연구가 시작됐다.
국내 성차의학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나영 교수와 박성미 교수는 의학 교육으로도 그 눈을 돌렸다. 미래 의료인들이 기존의 남성중심적 의학이 만드는 무의식적인 편견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18년, 박 교수는 2022년 각각 서울대와 고려대 의과대학에 성차의학 강의를 개설했다. 김 교수는 2018년 성차의학 수업 첫 해 수업을 들었던 서울의대 학생 중 하나가 “연구가 이거밖에 안 됐냐?”고 실망스럽게 되묻던 것을 유쾌하게 기억했다.
“성차의학은 설명이 되는 연구예요.” 김 교수는 성차의학이 ‘맞춤의학’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주목해 더 깊은 의학적 지식을 쫓다 보면 그동안은 몰랐던 과학적 발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모두를 위한 의학 연구가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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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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