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은 악마의 무기”···스마트폰 없던 수도자도 피할 수 없었던 것[책과 삶]

김한솔 기자 2023. 9. 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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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만 집중’하기 위해서
세상과 단절하고 욕구를 참은
중세 수도자들 집중 위한 몸부림
.
인스타 릴스보며 할 일을 잊은
우리와 다를 바 없던 그들의 삶
‘인간’이기에 산만한 것이었다
책을 들고 있는 수도자의 이미지. 수도자들은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했다. 픽사베이

집중력 설계자들

제이미 크라이너 지음·박미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328쪽 | 1만8000원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그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면 갑자기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 일을 좀 해보려고 하면 갑자기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고민이 된다. 세상에는 ‘열심히 하려는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스마트폰이 제일 문제다. 간단한 검색을 하기 위해 집어들었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인스타그램 릴스를 넋 놓고 보게 된다.

<집중력 설계자들>을 쓴 제이미 크라이너는 미국 조지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다. ‘집중’이라는 주제는 그의 오랜 화두였다. 그는 학부 시절 4년간 클라리넷을 배웠다. 항상 충분히 연습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그에게 클라리넷 강사는 말했다. “딱 두 시간만 집중해 연습하면 충분하다.” 그가 ‘집중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중세 초기 생활사를 연구하던 그는 문득 1500년 전에 살던 사람들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집중력 부족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대인의 집중력을 앗아간 원인으로 꼽히는 스마트폰. 픽사베이

<집중력 설계자들>은 중세 수도자들이 오로지 ‘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대략 300~900년)에 활동한 수도자들의 목표는 ‘마음을 절대자와 연결하고 흔들리지 않는 집중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성공한 수도자들에 대한 전설같은 기록은 많다. 어떤 수도자는 60년 동안 강가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강물을 보지 않았다. 다른 수도자는 동굴에서 기도를 하는데 천장에서 수시로 뱀이 떨어져도 한 번도 움찔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눈에 완전히 파묻힐 때까지 꼼짝 않고 앉아 기도를 하다가 결국 동네 사람들이 눈을 퍼내어 구조해야 했던 수도자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담 뒤에는 평생을 ‘산만함’이라는 적과 투쟁하며 살아간, 더 많은 보통의 수도자들이 있었다.

수도자들도 결국은 인간이다. 스케티스 수도공동체의 사부였던 포이멘은 “모든 사악함의 핵심은 방황하는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도자들은 왜 이런 산만함이 생기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원인 중 하나로 악마를 꼽았다. 폰토스의 수도자인 에바그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악마는 몸이 얼음처럼 차갑다. 그래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수도자의 눈꺼풀과 머리를 만지는데, 그 과정에서 수도자를 졸리게 한다. 수도자가 책을 읽으려는 시점에 더 그렇게 한다.”

4세기 수도자였던 폰토스의 에바그리우스. 그는 악마가 수도자의 집중을 방해한다고 봤다. 위키피디아

요즘 사람들이 보면 웃을 수도 있겠으나, 수도자들의 고민은 그만큼 진지했다. 악마 때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집중이 쉽게 흐트러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집중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썼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었다. 현대인들이 무언가에 집중하겠다며 소셜미디어 계정을 잠시 닫는 것과 유사하다. 수도자들은 가능한 한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추구했다. 모든 재산을 포기하기도 했고, 가족들도 만나지 않았다. 외출을 최소화하고, 땅을 보고 걸었다.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최소화했다. 이보다 어려운 것은 인간의 몸이 갖는 생물학적 욕구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수면욕, 성욕 등 여러 욕구 중 수도자들이 가장 힘겨워 했던 것은 식욕이었다. 이들은 배가 부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한 수도자는 오이가 먹고 싶어지자 벽에 걸어놓은 뒤 “애초에 그런 욕망을 품었던 자신을 꾸짖었다”고 한다.

압도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된 산만함이었다. 물리적 욕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협소한 기도실에서 기도 중 문득 드는 ‘부모님의 집은 얼마나 편할까’ 같은 잡념은 그냥 갑자기 발생하는 ‘상황’에 가까웠다. 수도자들은 잡념을 ‘악마의 무기’로 여겼다. 잡념이 떠오를 때 즉시 대응할 만한 시편을 읊을 수 있도록 다독하기도 했고, 명상을 해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놔두되,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분하는 분별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수 세기에 걸친 노력 끝에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고안해 냈을까? 그러진 못했다. 그런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만함을 “인류의 영원한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산만함과 씨름하는 문제가 현대 세계에서 오는 압박과 유혹의 징후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수도자들은 산만함이 인간 경험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여겼다.”

제목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자기계발서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중세 수도자들의 집중력 향상 여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미시사다. 인간이기 때문에 산만하지만, 또 인간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의 기록이다. 지금 당장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보다는 ‘도대체 왜 인간은 이렇게 산만할까’라고 자조하고 있는 이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당신이 산만한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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