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살린 ‘네잎클로버’…‘꽃반지’ 생각나는 토끼풀 꽃[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9. 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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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국화…세 잎은 성부·성자·성령 그리스도교 삼위일체 상징
‘타감물질(他感物質)’ 분비…잔디보다 더 강한 생명력
알프스 산맥 넘던 나폴레옹 살린 네잎클로버 ‘행운의 잎’
꽃반지·꽃팔찌·꽃목걸이 향긋한 추억…꽃말은 ‘약속’
토끼풀 꽃은 20∼50여 개의 나비 모양 작은 꽃들이 둥글레 모여 공 모양을 이룬다. 늦봄 노랑선씀바귀와 함께 피어있는 모습. 2022년 5월13일. 용산 대통령실(옛 국방부) 앞 잔디광장 언덕은 5∼6월 토끼풀 꽃이 무리지어 피어난다.

<안개 덮인 새벽/시골 버스정류장 옆 풀숲에서/세 잎, 네 잎 자라난 토끼풀//오래 전, 아름답게 살자던 언약/책갈피에 눌려 편지지에 붙인 사연/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꽃반지, 꽃팔찌는 불도장(火印)처럼/가운뎃손가락에, 손목에 추억으로 남아/오늘도 가슴을 덥혀주는데//세상사에 이지러지고/빗장 걸려 있는 내 마음에/행복과 행운을 전해주던 토끼풀//안개 자욱한/아침을 헤치고 오는/버스의 안개등 불빛이 환하다.>

박민순 시인의 ‘토끼풀’이다.

유년시절 보물찾기 하듯 행운의 네잎 클로버(Clover)를 찾아 ‘토끼풀’밭을 헤맨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들지만, 중년 이상 세대에게는 토끼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하얀 토끼풀 꽃을 엮어 만든 꽃반지와 꽃목걸이!

그 토끼풀을 자세히 뜯어보고 들여다보면 흰색 분홍색 갈색 푸른색 등 꽃 색깔과 모양이 너무나 다종다양하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가장자리 흰색과 가운데 붉은색 꽃잎이 조화를 이룬 토끼풀 꽃. 2020년 5월13일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

토끼풀(Trifolium repens)은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 토끼풀속(클로버)의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처음에는 사료용으로 재배됐다. 소나 양의 먹이가 되며 거름으로 많이 이용된다. 지금은 귀화식물로 야생에서 잡초처럼 무리지어 자란다.

토끼풀은 ‘클로버’로 부른다. 토끼풀 이름 유래는 3가지다. 먼저 토끼가 즐겨 먹기 때문이라는 설과, 잎이 토끼 발자국을 닮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하얀 꽃봉오리가 토끼 꼬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토끼풀은 콩과 식물의 특징인 질소고정식물이다. 토끼풀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토끼풀이 사용하는 질소는 그 일부에 불과해 다른 생물에게 나눔을 하게 된다. 토끼풀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해 식물의 생장과 건강을 돕는데 토끼풀이 사용하는 질소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토끼풀이 사용하고 남은 질소가 토양에 남아 있어 다른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노랑선씀바귀와 함께 무리지어 피어있는 토끼풀 꽃. 2019년 5월21일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

토끼풀은 잔디밭이나 산자락 등지에서 잘 자란다. 줄기는 땅 위를 기며, 각 마디에서는 긴 잎자루를 가진 잎이 곧게 뻗어 나온다.‘토끼 풀밭의 잔디는 못살아 남아도 잔디밭에 토끼풀은 산다.’ 잔디밭에서는 잔디와 토끼풀이 힘겨운 생존게임을 벌인다. 그 유약한 토끼풀이 그 질긴 잔디를 이긴다는 것이다. 빠르게 줄기를 뻗어서 널따란 잎으로 햇빛을 가려 밑에 있는 잔디를 녹여버리는 것이다. 토끼풀은 생존을 위해 다른 식물들의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물질(他感物質)’을 분비한다. 타감물질이란 식물이나 미생물이 자신을 방어하거나 주변의 생물을 공격하기 위해 분비하는 화학 물질을 일컫는다. 식물의 경우 다른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저해한다. 예를 들면 침엽수 뿌리에서 분비되는 물질은 초본류의 생육을 억제하고, 국화과 식물은 폴리아세틸렌과 같은 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식이다.

꿀벌과 토끼풀 꽃. 토끼풀 소엽에 ‘브이 자(V)’ 모양의 흰 무늬가 새겨 있다. 2019년 5월21일.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

이 타감물질을 ‘테르펜(Terpene)’이라고도 한다. 토끼풀은 상대를 못 살게 하는 타감물질을 분비하며 세를 키우는 것이다.

겉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들도 동물 세계 못지않게 죽고 죽이는, ‘너죽고 나살자’는 생존게임, 혈투가 그칠 새 없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길을 걷다 보면/여기저기/세잎 클로버가 /눈에 띈다//지천에 무더기로/널려있는/낯익은 연두빛/ 세잎 클로버//행복은 이렇게/낯익은 것//너와 나의 삶/가까이 있는 거다>

정연복 시인의 ‘세잎클로버’다 .

잎은 대부분 3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돼 있는데, 때로는 4∼5개 또는 7∼8개의 작은 잎을 가지는 것도 간혹 있다. 어른들은 네잎클로버에 대한 추억 한두개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돌연변이에 가까운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된 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이야기에서 유래된다.

나폴레옹은 네덜란드와의 워털루 전쟁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던 중, 광활한 클로버 군락지를 지나게 된다.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나폴레옹. 신기한 마음에 네잎클로버를 살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적군의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며 모자를 떨궜다고 한다. 네잎클로버 덕분에 목숨을 건진 나폴레옹은 이를 ‘행운의 잎’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꿀벌들이 제우스 신에게 좋은 꿀이 있는 풀들을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제우스는 커다른 붓으로 흰 물감을 묻혀 표식을 남긴다. 토끼풀 소엽에 ‘브이 자(V)’ 모양의 흰 무늬가 새겨 있다. 꿀벌이 좋아하는 달콤한 꿀이 풍부하게 있다는 표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토끼풀은 아일랜드 국화이기도 하다. 토끼풀의 3개의 잎들은 정확히 120도의 각도로 벌어져 있다. 토끼풀의 세 잎은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중세시대 교회의 창문 도안으로 많이 사용됐다.

서기 433년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에 가톨릭 교리를 설교하면서, ‘토끼풀의 세 잎이 한 줄기에 달린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셋이면서 하나라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를 설명했다"고 전한다.

흰색 다음으로 많이 눈에 띄는 분홍색 계열 토끼풀 꽃. 2019년 5월 21일 용산 대통실 앞 잔디광장

토끼풀은 늦은 봄부터 여름을 나며 꽃을 피운다. 주로 흰색 꽃을 피우지만 분홍색 줄무늬, 흰색과 더불어 갈색, 푸른색

등이 조화를 이룬다.

꽃은 20∼50여 개의 나비 모양 작은 꽃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공 모양을 이룬다. 꽃은 길이 9mm 정도다. 꽃받침은 5갈래로 깊게 갈라지고, 꽃은 5장이다. 커다란 1개의 익판(翼瓣)과 한쌍의 기판(旗瓣), 또 한쌍의 용골판(龍骨瓣)으로 이뤄져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다. 기판은 마른 다음에도 떨어지지 않고 갈색으로 말라서 열매를 감싼다.

토끼풀의 꽃말은 ‘약속’이다. 유년시절, 금방 시들어 버리지만, 꽃향기 풀풀 나는 꽃반지 끼고 먼 훗날 우리의 우정과 사랑은 영원하자며 했던 그 약속들! 토끼풀은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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