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건강] "노인 10%가 대변 새는 '변실금'…세척가능 공공화장실 늘려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고령화 추세에 변실금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변실금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변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질환으로, 소변이 찔끔찔끔 새는 요실금과 비슷하다.
자기도 모르게 속옷에 배변하거나 화장실 도착 전에 대변 마려움을 참지 못해 배변하는 경우,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도 배변이 새어 나오는 경우,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변이 새어 나오는 경우 등이 모두 변실금에 해당한다.
이런 변실금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말 못 할 고민이 되면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거나 사회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
2일 대한대장항문학회에 따르면 국내 변실금 유병률은 65세 이상 인구에서 10명 중 1명꼴 이상인 10~15%로 추정된다. 지난해 고령자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901만8천명이니 약 90만명 이상이 변실금 증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변실금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는 매우 드문 게 현실이다.
학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국내 변실금 진료 환자 수는 2012년 6천266명에서 2022년 1만5천434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65세 이상이 1만1천명(71.3%)인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국내 변실금 환자 가운데 약 1.2%만이 병원 치료를 받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성범 대장항문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은 "변실금은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에서 노년기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학적인 문제"라며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질환의 특성 탓에 질병이 생긴 줄 알면서도 치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변실금에 대한 인식 전환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실금은 항문 괄약근의 손상으로 항문을 조이는 기능이 약화하거나, 괄약근을 조절하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대변 마려움을 뇌에 적절히 전달하지 못해 발생한다. 이런 이상은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괄약근이 자연스럽게 위축돼 나타나기도 하지만, 분만 과정이나 항문수술 중에 괄약근이 직접적인 손상을 입어서 생길 수도 있다.
변실금은 증상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항문 주변에 남아 있는 대변으로 인해 피부감염이나 방광염이 발생할 수 있고, 통증이나 가려움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학회가 변실금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 외출이 어렵다 ▲ 냄새가 난다 ▲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 기저귀 착용으로 자존감이 낮아진다 ▲ 성생활에 방해가 된다 등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환자의 42.6%는 증상이 생긴 지 1년이 지나서야 병원을 처음 방문한 것으로 분석됐다. 증상 발현 후 한 달 이내에 병원을 찾은 사람은 13.9%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변실금 증상이 발생했다면 되도록 빨리 병원을 찾아 내시경, 영상검사, 항문직장내압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변실금은 식단 조절, 약물 치료, 배변 훈련, 바이오피드백 치료, 수술, 전기 자극치료 등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설사가 원인이라면 섬유소를 많이 섭취하고, 설사를 일으킬 수 있는 음식(카페인, 술, 매운 음식, 우유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골반 근육을 하루에 50~100번 정도 조였다가 이완시키는 골반근육운동을 병행하면 항문괄약근을 강화해 변실금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이런 생활습관 개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항문에 전기 센서가 달린 기구나 풍선을 삽입해 항문 근육을 강화하고 직장의 감각을 되살리는 바이오피드백 치료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항문조임근의 구조적인 결함이나 손상이 있는 경우에는 항문성형술 혹은 항문복원술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치료가 폭넓게 제공되려면 변실금 진료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변실금 진료 수가는 미국과 일본에 견줘 25% 수준으로 매우 낮다는 게 학회의 분석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외과 김태형 교수는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수가 체계에서 변실금 환자 진료에 대한 외과 의사 개개인의 열정에만 기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초고령 사회에서 필수의료 중 하나임이 분명한 변실금 진료에 대해 정책수가가산 등의 실제적인 수가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변실금이나 장루 환자를 위한 공공 화장실이 확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화장실 이용 때 세척 시설이 필요한 질환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는 병원 두 곳(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과 역사 두 곳(수서역, 대구 청라언덕역)에만 이런 전용 화장실이 설치돼 있을 뿐이다. 일본의 경우 2000년에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 50㎡ 이상의 공중화장실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는 세척이 가능한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병원상처장루실금간호사회 김정하 회장은 "변실금 환자가 증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대인 기피, 우울 등 정신과 질환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장루장애인협회 전봉규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누구든지 공공시설 내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해, 변실금·장루 환자들이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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