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진이형, ‘엔씨탈출 넘버원’은 안돼요…신작 TL이 물려버린 95% 주주 구원할까 [신동윤의 나우,스톡]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 가운데 ‘형’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인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용이형’으로 불리는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용진이형’으로 불리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도가 있죠. 여기에 오늘 분석해 볼 엔씨소프트의 창업주 김택진 최고경영자(CEO)가 ‘택진이형’으로 불립니다.
택진이형이 대중으로부터 더 친근한 이미지를 쌓은 것은 프로야구 창원 NC다이노스를 창단한 구단주로서 야구에 진심인 ‘성덕(성공한 덕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입니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 지적재산권(IP) ‘리니지’ 시리즈 광고에 직접 출연한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셀프 디스는 물론이고, 리니지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자신을 부르는 ‘TJ(택진)’란 호칭을 스스로 말하는가 하면, 게임 유저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아이템을 선물하면서 대중 친밀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2020년 한국시리즈 때는 김 CEO를 비롯해 게임 개발자들이 대장장이로 분장해 ‘진명황의 집행검’을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고, 해당 집행검이 NC다이노스의 우승 세리머니에 사용되면서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엔씨소프트답다’라는 칭찬까지 나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CEO에겐 가장 큰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엔씨소프트하면 떠오르는 게임이 ‘리니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 1위 자리를 장기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큼은 대단한데요. ‘너~~무’ 리니지 원툴이라는 점이 항상 리스크로 꼽히죠.
최근 들어서는 리니지의 매출, 영업이익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이익 체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되고요.
증권가에선 게임 대장주 ‘3N(엔씨소프트·넥슨·넷마블)’의 일원인 엔씨소프트의 부진이 예상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갈 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2분기 매출 4402억원, 영업이익 353억원을 거뒀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71.3%나 줄어든 수준이죠.
유일하다시피한 무기인 ‘리니지’ 시리즈가 부진의 늪에 빠져버리자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어진 상황으로 보입니다. 작년부터 회사 매출을 책임지던 리니지W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4%나 감소했고, 리니지M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9.5% 감소했습니다.
충격이 더 큰 것은 3개월 전에 있었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시즌까지만 해도 영업이익은 2분기에 더 낮아질 지 몰라도 매출액 만큼은 1분기를 상회할 것이라 전망했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가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5월 11일 보고서를 통해 “리니지M 6주년 대규모 업데이트(6월 21일), 리니지2M 업데이트(5월 10~24일), 리니지W 대규모 이벤트(5월 9~23일) 등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한 매출 유지, 회복이 예상된다”며 매출 회복 가능성을 점친 바 있죠. 그 말은 이 많은 이벤트들의 효과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엔씨소프트의 캐시카우 노릇을 톡톡히 했던 리니지 시리즈는 이제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이제 가볍게만 들리진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명 ‘리니지 라이크’ 장르로 불릴 정도로 유사한 게임이 쏟아져 나온 탓에 이용자층이 줄었고, 이것이 곧장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웹젠의 R2M, 카카오게임즈의 아키에이지워 등은 엔씨소프트가 아예 ‘표절작’이라 소송을 제기했고, R2M의 경우 1심에서 엔씨소프트가 승소하기까지 했는데요. 사실상 소송으로 경쟁자(?)들을 쳐내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제 살길은 리니지를 대체할, 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거운 짐을 나눠 질 만한 차세대 캐시카우 게임을 서둘러 개발하는 것일텐데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엔씨소프트의 문제점은 과거 대비 높아진 흥행 불확실성”이라며 “출시 예정작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앤리버티(TL)가 국내 게임사들에겐 아직 생소한 PC·콘솔 디바이스로 출시된다는 점과 사용자 피드백까지 부정적이었던 점은 투자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앞서 엔씨소프트는 지난 5월 한국에서 이용자 1만명을 대상으로 TL에 대한 베타 테스트를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한마디로 좋지 못했습니다. 고품질의 화면, 광활한 오픈월드, 기존 엔씨소프트의 게임과는 다소 다른 유료상품 구성(BM) 등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MMORPG가 연상되는 자동 사냥 기능과 하루 최대 8시간의 비접속 플레이 기능, 단순 반복 사냥을 통한 성장 구간의 존재 등 차세대 PC·콘솔 멀티플랫폼 MMORPG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징이 부정적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특히 해외 커뮤니티에서 자동 사냥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변화한 모습의 TL은 이달부터 예정된 북미 지역 테스트에 투입될 계획입니다.
이 외에도 내년 하반기까지 엔씨소프트는 4종의 모바일게임 신작을 출시하겠다고 예고해 놓은 상태인데요. 이를 두고도 정 연구원은 “엔씨소프트의 전공분야가 아닌 실시간전략게임(RTS), 캐쥬얼 게임 등 생소한 장르라 흥행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죠.
원래 자체 개발 인력이 탄탄한 대표적인 게임사를 꼽으라면 엔씨소프트가 절대 빠지지 않는데요. 넓은 인력 개발 풀에 비해 게임 개발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도 거셉니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역량 있는 디렉터의 부재로 프로젝트 완성도가 올라오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신작이 없는 상황에서 매출 대비 47.4%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여전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설명하기도 했죠.
큼직큼직한 문제점들이 워낙에 많다보니 바닥을 뚫을 듯 떨어져버린 주가가 과연 다시 오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1일 기준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25만3500원입니다. 올해 첫 거래일(1월 2일·44만8000원)과 비교했을 때 무려 43.42%나 하락한 수준이죠. 이 기간 엔씨소프트가 상장돼 있는 코스피 지수는 14.64%나 상승했습니다. 엔씨소프트 주가는 올해 24만60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죠.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엔씨소프트 주가 하락세는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엔씨소프트 주가는 불과 2년 전이던 2021년 2월 8일 종가 기준 103만8000원까지 올라간 적 있습니다. 잠깐이나마 ‘황제주(주당 100만원 이상 주식)’의 지위에 등극해본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주가 최고점 대비 주가 최저점까지 하락률은 무려 60.55%에 달합니다. 금액으로는 79만2000원에 이르고요. 시가총액으로 봤을 때도 22조7883억원이었던 게 5조5653억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약 2년 7개월 사이에 17조2230억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해버린 겁니다.
국내 증시 상장 종목 중 시가총액 순위로도 18위에서 68위로 50계단이나 밀렸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소액주주 수는 14만명(2022년 12월 31일 기준)입니다. 대신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사이보스5’를 통해 분석한 2021년 2월 8일부터 지난 1일 사이 매물대를 분석해보면 주주 95% 가량이 주당 30만원 이상 수준에서 물린 상황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과연 이들에게도 ‘익절’의 기회가 올까요?
정호윤 연구원은 엔씨소프트의 목표주가를 44만원에서 35만원으로 대폭 내려잡았습니다. 신작 기대감에 기반한 주가 상승이 어려운 만큼 주가는 실제 흥행 여부를 확인한 후 움직일 것이라고도 설명했고요. 이에 따르면 TL 국내 출시가 시작될 12월까지 주가는 횡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2024년에는 TL을 비롯해 신작 출시가 재개되고 2025년에는 가장 큰 기대작인 아이온2의 출시 가능성이 있어 추가적인 주가 하락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설명이 위안이 되는 상황입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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