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있는 나이, 지금 어디까지 와있습니까? [세상을 바꾼 법정]㉕

김근욱 기자 2023. 9.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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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시대정신이다.

1·2심은 일실 수입의 산정 기준이 되는 '일할 수 있는 나이'(가동연한)를 60세로 봤다.

이른바 '백세시대'에 사람이 돈 벌 수 있는 나이를 60세로 규정하는 관행적 판결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람은 60세를 넘어 65세까지도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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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에게 불어 닥친 불의의 사고…'가동 연한' 논의 불붙여
일할 수 있는 나이 60→65세로 …'마지막 퍼즐' 아직 남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8년 전 이맘때쯤이었을 테다. 네 살짜리 아이가 수영장에서 사망했다. 부모와 떨어져 혼자 돌아다니다 풀장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였으리라. 그리고 이 사고가 세상을 바꿀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 사고 후 이어진 '소송전'

유족은 사고 이후 수영장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수영장 측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며 60%의 책임을 물었다.

문제는 '일실 수입'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뜻하는 용어다. 사망 사고 손해배상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2심은 일실 수입의 산정 기준이 되는 '일할 수 있는 나이'(가동연한)를 60세로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1989년 판결에 따라 약 3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기준이었다.

그러나 유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백세시대'에 사람이 돈 벌 수 있는 나이를 60세로 규정하는 관행적 판결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까지 열고 전문가와 각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 일할 수 있는 나이 '60→65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2월21일 심사숙고 끝에 30년 만에 기존 판례를 변경하기로 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법은 그대로라는 유족 측의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은 국민의 평균 수명이 남자 79.7세, 여자 85.7세까지 늘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3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법정 정년은 만 60세 또는 만 60세 이상으로 연장됐고 실질 은퇴연령은 남성 72.0세, 여성 72.2세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람은 60세를 넘어 65세까지도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상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60세로 인정한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조정 여부를 두고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2018.11.2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 가동연한 상향…무엇이 바뀌었나

이 판결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파장은 상당했다. 대표적 변화는 손해배상액 증가다.

일례로 35세 일용근로자가 교통사고로 숨진 경우 손해배상액은 약 2억7700만원이었으나 65세로 늘자 3억200만원이 책정됐다.

물론 달가운 변화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손해배상액이 늘자 보험료도 올랐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대형 손보사들은 지난 2019년 자동차보험료를 평균 3% 인상한 데 이어 2020년엔 3.5% 인상했다.

◇ 마지막 퍼즐은 아직

이 판결이 가져올 마지막 변화는 바로 '정년의 연장'이다. 고령자고용법 19조가 규정한 근로자 정년 60세를 65세로 바꾸는 것.

당시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청년층의 반발, 기업 부담 등으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5년이면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고 한다.

정년의 연장. 선뜻 내세우기 어려운 주제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 판결이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노동계와 재계,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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