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나의 약점, 장점으로 바꾸는 법
나의 약점 분석
말하기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상대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일이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면 됩니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분석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말하기를 위해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건강한지,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가족은 다 무탈한지, 과거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그 고민은 해결됐는지,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그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지 등등 알려고 하면 알아야 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 많은 것들을 다 파악하려면?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물어보면 됩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는 상대보다 사실은 내가 나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하지만 적을 아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단점을 정리하는 기회
지난번 글에서 말하기의 요체는 자존감에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자신을 10개 문장으로 표현하는 숙제를 내드렸습니다. 순식간에 열 문장을 다 채운 분도 있으시겠지만, 대여섯 문장에서 막힌 분도 많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재미있는 기억을 떠올린 경우가 있을 겁니다. 나라는 우주로부터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생산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나를 제일 많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나이고, 또 그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뿐입니다. 이제 숙제 검사를 해볼까요? 제가 적은 10개 문장입니다.
① 나는 모자 쓰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②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습니다.
③ 역사 관련 콘텐츠를 좋아합니다.
④ 가장입니다.
⑤ 군중 속의 고독을 자주 느낍니다.
⑥ 별명이 파리였던 적이 있습니다.
⑦ 목소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⑧ 늘 책을 들고 다닙니다.
⑨ 리더를 맡는 걸 꺼리지 않습니다.
⑩ 기획하는 걸 즐깁니다.
이 숙제를 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나에 대해 어디까지 써 봐야 하는 걸까? 그래서 저는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10가지와 △나만 볼 수 있는 10가지로 나눠서 작성을 해봤습니다. 물론 둘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제가 적은 10가지 대부분은 공개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공개할 수 있는 건 장점과 평범함으로 채워질 것이고, 비공개 부분에는 단점과 약점이 꽤 많이 적힐 겁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큰 수확이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내 단점과 약점을 정리하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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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단점, 감추는 것도 일
보통 단점이나 약점은 감추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약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남들 눈에도 보이는 약점을 굳이 감추려 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개한 위의 열 문장 중 1번(나는 모자 쓰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을 다시 보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모자를 쓰고 멋지게 폼을 잡고 싶은 로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모자는 멋진 패션 아이템이 되질 못했습니다. 머리가 커서 그랬습니다. 작아서 잘 맞지 않은 모자가 많았고 머리에 얹혀진 넉넉한 크기의 모자는 그냥 이상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은 “군용헬멧이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참 좋은 친구들을 둔 덕에 저는 어려서부터 제 약점을 너무나 잘 알게 됐습니다. 비관도 많이 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도 커졌습니다. 머리 크기를 인위적으로 줄일 순 없기에 전 어깨를 넓히기로 했습니다. 어깨가 넓으면 상대적으로 머리가 작아 보일 테니까요. 저는 운동을 열심히 했고 꽤 넓은 어깨를 갖게 됐습니다.
나름 비율이 나쁘지 않았기에 아나운서가 되고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여성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게 되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남자 아나운서 머리 진짜 크다’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한 것이죠. 결국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같이 뉴스를 진행하는 선배 여성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임자와 뉴스할 때는 너무 불편했는데 지금은 너무 마음이 편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떤 뜻인지 알게 됐습니다. 내 약점을 상쇄하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제는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제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배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본인 얼굴 크기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오롯이 방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점이 있다는 식으로 저를 포장했습니다.
“요즘 여럿이 사진 찍을 때 얼굴이 커 보일까 봐, 혹은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행과 나란히 서지 못하고 은근슬쩍 뒤로 뒤로 가려고 하시잖아요. 저하고 방송할 때는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크기와 관련한 고민거리는 제가 다 맡을 테니, 오롯이 방송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저와 함께 방송하는 여러분이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제가 맡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함께 성장하겠습니다.”
개편을 앞두고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편 때는 누구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시기인데, 제가 이렇게 말을 풀고 나면 모두 한바탕 웃게 됩니다. 저를 향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는 제 머리 크기를 화제로 올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약점 공개를 적극 추천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약점까지 공개하는 건 피하셔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만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나에 대한 분석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지,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한국방송 아나운서
어릴 때는 목소리가 큰 아이였습니다. 청소년기부터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년인 지금은 스며드는 목소리이고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말하기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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