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불린 브릭스, 미국 주도 국제질서 대항마 될 가능성은?

정의길 2023. 9.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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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회원국 확대 브릭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지난 8월23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손을 잡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 주도하는 연합체)는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8월22일부터 2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상회의를 연 브릭스가 이란 등 6개국을 내년부터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미국 주도 국제질서 대안 모색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됐다.

이번 브릭스의 회원국 확대를 놓고, 서방 주요 언론들은 ‘미국에 위협은 아니나 경각 촉구’(AFP), ‘세계 경제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에 도전하는 싸움’(파이낸셜타임스), ‘회원국 수요는 세계 무질서의 징후’(가디언), ‘중국에 큰 승리, 하지만 서방에 대항마로서 작동할까?’(CNN), ‘투자자들이 확장된 브릭스의 경제적 중요성을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로이터) ‘이란, 브릭스 초청으로 서방에서의 왕따 신세 일축’(뉴욕타임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브릭스 회원국 확대가 국제질서에 변화를 줄 실질적 내용보다는 현재로서는 포장에 그친다는 평가다. 하지만, 포장지 내부를 채울 잠재력조차 부정할 건 아니라는 게 서방 언론의 시각이다.

‘반미 대표국’ 이란의 가입

이번 브릭스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신흥국)의 부상과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미국 등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들파워(중견) 국가 및 개발도상국들이 브릭스에 가담해,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대안을 찾는 데 중국·러시아와 보조를 맞출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애초에는 인도와 브라질이 회원국 확대와 관련해 반서방적 접근에 반대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서,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반미국가의 대표 격인 이란까지 포함한 6개국(사우디·아랍에미리트·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 가입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회원국 확대에 적극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와 브라질도 중·러에 밀린 것은 아니고, 브릭스 안팎에서 협상력을 제고하게 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국제제재를 받은 국가를 제외하고, 회원국의 경제력 규모 기준을 제안하며 끝까지 합의를 미뤘다고 전해진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브릭스는 반서방 대항체가 아니다”라며 반서방적 접근에 반대했다. 회원국이 확대돼도 이란은 제외될 것으로 관측됐던 이유다. 하지만, 이란까지 포함된 6개국 가입 결과를 놓고 보면, 인도와 브라질은 브릭스 안팎에서 협상력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서방과 중·러 진영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인도와 브라질은 브릭스 내에서 회원국 확대의 열쇠를 쥐며 중·러를 견제하는 한편, 확대된 브릭스를 통해서 서방에 대해서도 협상력을 키우게 됐다. 국제 외교저널 ‘포린 폴리시’도 ‘인도는 더 커진 브릭스가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회원국 확대는 “중국에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줄 것이나, 이는 또 브릭스 자체의 영향력 증대를 의미한다”며 “브릭스를 중요한 실체로 보는 인도에도 좋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존 회원국들이 브릭스를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일치하고, 브릭스를 중요한 도구로 키워갈 의지도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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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석유대금 결제 ‘탈달러’ 주목

확대된 브릭스의 첫 시험대는 회원국 사이의 경제협력, 특히 회원국 사이의 교역에서 자국 통화 결제의 확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 패권에 대한 대안 모색은 중·러뿐만 아니라 인도와 브라질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의 화상 연설에서 다극화된 세계를 향한 결정적 발걸음은 탈달러이고, 이는 “이미 불가역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은 2022년 브릭스 기존 회원국 사이의 교역에서 사용된 달러 비중은 28.7%에 그쳤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오히려 중국-러시아 사이의 자국 통화 결제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브라질도 중·러와의 교역에서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서 브릭스 정상들은 회원국 재무장관 협의체에서 단일 결제 시스템 창설 가능성을 논의하기로 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29일 주례 회견에서 “교역 결제통화 창설에 우리가 합의할 수 있을지 재무장관들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며 브릭스 교역 결제통화 창설은 “달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브라질과 헤알화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넉 고동과나 남아공 재무장관은 오는 10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연례회의에서 브릭스 국가 재무장관들이 우선 상호 교역에서 자국 통화 사용 확대를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지점은 브릭스 새 회원국이 되는 사우디의 행보다. 달러 패권의 주축은 석유 대금 결제다. 사우디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과의 석유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등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등 이미 비달러화 비중 확대에 운을 뗀 상태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의 브릭스 가입이 석유 거래에서 비달러화 결제를 확대할 것이라는 추측을 투자자 사이에서 자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브릭스 확대의 “단기적 결과는 석유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신은 “만약 석유 거래에서 달러 외의 통화 결제가 조금만 확대돼도, 이는 큰 변화”라는 자산 전문가들의 견해도 소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릭스 회원국들이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그 차이가 크다며 “우리는 브릭스가 미국에 대한 지정학적 경쟁자 같은 것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서방의 주요 지도자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브릭스 확대는 현재 너무 서방적으로 보이는 세계 질서를 대체하는 대안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열망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인정했다.

브릭스는 회원국 확대로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26%에서 37%로, 교역 비중은 18%에서 21%로, 인구 비중은 40%에서 46%로 늘었다. 브릭스가 몸집만 큰 허장성세인지 혹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진원지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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