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 자수성가 회장의 언격실격

유윤정 생활경제부장 2023. 9. 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피해자들의 인격을 모독한 사건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거짓말로 일관하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2021년 11월 8일, 1심 판결한 의정부지방법원)

최근 자수성가 한 국내 유통기업 리더,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화제다. 단호한 어조로 판결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대법원이 그대로 확정했다.

홍 회장은 원래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다. 1980년 자본금 200만원으로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에 ‘마리오상사’를 설립한 그는 2001년 국내 최초 도심형 아웃렛 쇼핑몰인 ‘마리오아울렛’을 서울 금천구에 개장했다. 2020년엔 연매출 3000억원대로 회사를 키우며 승승장구했다.

최근엔 수백억을 들여 박근혜·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私邸)를 잇따라 사들이며 ‘대통령 사저 컬렉터’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런 그가 나이도 지긋한 50대 중년의 직원들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 받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사건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회장은 2019년 9월 8일 오전 11시 20분쯤 자신이 운영하는 관광농원에서 직원 A씨 등에게 “야이 X새끼들아 이 X새끼들아, 이 허접한 새끼들아, 당장 그만두고 꺼져”라고 욕설을 했다.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버드나무 한그루가 꽃밭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서는 직원들이 빨리 치우지 않았다며 노발대발한 것이다.

약 4시간 후 또 다시 직원들에게 “야이 새끼야 니가 정원사냐 새끼야” “다른 직장 구해봐라 새끼야”라고 욕설을 했다.

3시간이 지나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추석 전까지 다 꺼져, 돼지처럼 (밥을) 잘 쳐먹네, 이 X새끼들아 꺼져”라고 욕설을 했다. 직원 B씨에게는 “너는 소도둑 같이 생겨서 일도 못하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홍 회장에게 벌금 200만원의 약식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불복한 홍 회장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한 사건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며 징역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나 형사소송법상 벌금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거짓말로 일관하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다.

홍 회장은 즉각 항소했다. 자신의 발언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고 원심의 벌금 300만원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모욕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그는 또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돼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 후에도 홍 회장측은 “일부 직원들의 과장된 진술에만 의존해 인용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입장문을 냈다.

4년여간 재판부가 네 차례나 동일한 판결을 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격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외모의 부족함은 화장법이나 적절한 옷차림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말에서 드러나는 인격의 부족함은 그 무엇으로도 커버할 수가 없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언어를 디자인하라>의 저자 박용후는 “사람의 언어는 물고기의 비늘과 같아서,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가 어떤 물살을 헤치며 살아왔는지,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는 일이다. 이는 기업 위기관리의 핵심이다. ‘인격 모독’은 순전히 개인의 인격 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법원 판결 이후 경영자와 회사의 대응은 그룹 전체의 브랜드 이미지 훼손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쿨하게 사과하라>의 저자 김호·정재승은 “사과의 앞뒤로 변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 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사과를 할 때는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서를 청하라”라고 했다. 이처럼 사과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앞선 사건에선 리더로서 갖춰야 할 ‘언격’도 ‘진정성 있는 사과’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리더가 있는 조직에선 늘 남 탓을 습관적으로 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만드는 기업문화가 싹튼다. 부하직원, 협력사를 포함한 ‘을’ 모두에게 갑질하는 문화가 암세포처럼 퍼진다. 자본금 200만원에서 시작해 눈부시게 성장한 한 기업의 미래가 리더 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무너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유윤정 생활경제부장]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