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2023. 9. 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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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실재론적 마술>

[배혜정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문화살롱 5120 디렉터]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 문구는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 아래쪽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사이드 미러에는 운전자 시야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자 볼록 거울이 사용된다. 따라서 사물이 실제 거리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다. 생태학자이자 문학 이론가, 객체지향 철학자인 티머시 모턴은 인간이 다른 사물과 맺는 관계, 인간의 세계에 대한 다른 이해를 촉구하는 이 책 <실재론적 마술>의 서론 제목을 이 문구로 정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세계 속에서 우리와 사물이 맺는 관계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매우 다양하고도 많은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 사물은 물건이거나 다른 생명체이기도 하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물을 필요와 용도에 따라 규정한다. 시계는 나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거실의 틸란드시아는 키우기 쉬운 공기 정화 식물로 지난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집에 들였다. 이렇듯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 규정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세계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인다.

근대 이후 인류는 세계에 대한 파악에서 진일보를 이루었다. 사물을 분석해 규정하고 그렇게 대상에 대한 이해는 완벽한 듯 보인다. 공기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구성되고 생명체의 생명유지에 기여하며, 굴러오는 당구공에 맞선 당구공은 둔탁한 부딪침의 인과성을 만들어 내면서 운동한다. 분석해 낸 사물, 원심력이나 마찰력 등 인간이 이해한 운동과 같은 아주 인간적인 이해는 대상을 탈신비화하고 인과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만든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며 이러한 이해를 벗어나는 일은 불합리한 마술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턴은 실재 자체가 기계적이거나 선형적인 인과성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과성은 하나의 비밀스러운 사태임에도 드러난 것"으로 "공공연한 비밀"이며 "신비로운 것"이다. 이는 사물의 실재성이라는 것이 말할 수 없음, 물러남, 비밀스러움 등 다양한 의미에서 어떤 신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변적 실재론의 한 갈래에 속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모턴은 사물이 인간에 의한 사물의 지각, 관계, 용도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레이엄 하먼 이후 객체지향 철학의 존재에 대한 이해, 사물이 우리로부터 "물러나 있음"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 존재가 띠고 있는 본질적인 양상"이며, 이 객체는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객체는 그것에 관한 시나 그것의 원자 구조, 기능과 같은 인간적 이해, 다른 사물들과 맺는 관계 등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이해가 언제나 한정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면 대상에 대한 마법적 경험, 그에 대한 예술적 생산은 미신과 같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조성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실재론적 마술'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문학사조의 이름에서 그 구조를 뒤바꾼 것이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가로는 콜럼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꼽힌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백년의 고독>은 환상과 일상의 혼재를 특징으로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 마을의 탄생, 중심인물인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듯한 신화와 사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마술과 현실이 결합된 서사 속에서 인과성이라는 인간적 세계 이해는 기계적인 기능에서 벗어난다. 그의 세계 서술은 모순적임에도 그래서 더 필연으로 여겨지는 인생사의 순리가 짙게 배어 있다. 모턴은 마르케스가 제국주의적 "실재"의 필연성으로 보이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이자, 부분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말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이라는 작업은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인과성도 미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연구하는 것 또한 다른 인과관계를 만들거나 인과성을 연구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모턴은 미적 사건이 "톱이 새로운 합판 조각을 베어 물었을 때", "벌레가 축축한 흙에서 배어 나올 때" 그리고 "거대한 객체가 중력파를 방출할 때"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삶은, 그리고 삶 속에서 우리가 사물과 맺는 어떠한 관계도 다 미적 사건이다. 그저 사용에 따른 대상과의 관계 규정이 우리 일상의 사건을 설명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 우리의 하루를 돌아 보자. 스마트폰 알람에 잠이 깨고 채 들지도 않은 정신으로 커피 머신을 누른다. 이렇게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나면 칫솔을 꺼내 들고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 준비가 마무리 되고 나면 차 키를 집어 들어 현관문을 열어 닫고 나온다. 우리의 삶은 실로 다양한 사물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커피 머신, 칫솔, 현관문과의 팀워크. 지금 나의 글은 지난 해 구입한 노트북의 키보드 버튼이 하나하나 나의 손가락과 협업해 쓰인다. 이 과정은 인과성의 미적 사건이자 각각의 협업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마술의 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실재론적 마술> 서론의 제목이자 이 글의 서두를 연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사이드 미러를 보고 뒤 차와의 간격을 확인한 후 차선을 변경한다. 요즘 차량의 센서는 매우 다양하게 구비되어서 사이드 미러 외에 감지 센서가 울려 추가적인 경고음을 운전자에게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때 이 장면은 각각의 미적 사건이 작동하여 만들어 내는 놀라운 사건의 하모니라 할 수 있다. 모턴은 "객체들과 그들의 감각적인 효과들은 공간 없이, 환경 없이, 세계 없이 마치 가면무도회의 음흉한 인물들처럼 함께 모여든다"고 말한다. 세계는, 그리고 삶은 인과성, 설명할 수 있는 것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논리적 사고가 제한한 더 많은 역설의 과정과 그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동시대 팍팍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일 뿐만 아니라 약탈되고 고갈되는 이 세계에 다른 속도를 만들고 다른 가능성을 여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재론적 마술>(티머시 모턴 지음, 안호성 옮김) ⓒ갈무리

[배혜정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문화살롱 5120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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