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사라졌다' 5일간 이어진 대규모 화재…사망자는 단 6명? [뉴스속오늘]

차유채 기자 2023. 9. 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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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666년 9월 2일, 영국 런던교 근처의 한 제과점에서 시작된 화재가 도시의 80%를 전소시켰다.

그러나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화재에도,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단 6명으로 기록돼 의문을 자아냈다.

화재는 1666년 9월 2일 일요일, 런던교 근처 푸딩 레인의 한 제과점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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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666년 9월,런던 대화재 당시 세인트캐서린 부두를 배경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무명의 화가의 작품. /사진=stpauls 홈페이지 캡처

"교회, 주택, 모든 것이 불붙어 단숨에 타올랐고, 무시무시한 소음이…" (새뮤얼 피프스의 일기 중)

1666년 9월 2일, 영국 런던교 근처의 한 제과점에서 시작된 화재가 도시의 80%를 전소시켰다.

닷새 동안 이어진 화염은 주택 1만3000채와 교회 88채를 비롯해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불태웠다.

그러나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화재에도,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단 6명으로 기록돼 의문을 자아냈다.

제과점서 시작된 불…런던을 덮치다
대화재 당시 런던의 풍경을 보여주는 17세기 판화 /사진=historic-uk 홈페이지 캡처

화재는 1666년 9월 2일 일요일, 런던교 근처 푸딩 레인의 한 제과점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화재는 동풍으로 인해 서쪽으로 번져 런던 시내로 확산했다. 25만명가량이 거주 중이던 런던의 대부분 주택은 나무로 지어졌었다. 이에 불은 쉽게 이웃집으로 퍼졌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17세기 주요 화재 진압 방법은 건물을 철거해 그곳에 방화벽을 설치함으로써 소화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행정 절차로 인해 방화벽 설치가 지연되면서 불을 더 키우게 됐다.

당시 영국은 네덜란드와 해상 무역을 두고 전쟁 중이었기에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이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더욱이 화재로 신문사가 소실돼 신문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되자 확인되지 않은 뉴스는 더욱 확산했고, 런던 시내에서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5일간 이어진 불…찰스 2세 궁전도 위협
대관식에서의 찰스 2세, 1661년 존 마이클 라이트 작 /사진=historic-uk 홈페이지 캡처

불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졌다. 화재가 시작된 지 이틀 뒤인 4일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파괴한 데 이어 찰스 2세의 화이트홀궁까지 위협했다.

다행히 동풍이 잦아들고 방화벽이 세워지면서 화재 발생 5일 만인 1666년 9월 6일, 불길이 진압됐다. 9일에는 비도 내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화재 진압 후였다. 화재로 집을 잃어버린 노숙자들이 시내에 급증했고, 이재민들이 먹을 음식도 없었다.

이에 찰스 2세는 이재민들에게 식량 지급을 약속하고, 런던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을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난민들이 추방되기도 했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이 화재로 쥐들이 불타 죽으면서 1665년 영국을 위협했던 '런던 대역병', 이른바 흑사병이 막을 내렸다.

도시의 80%가 사라졌는데 사망자는 6명?
런던 대화재 당시 대피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사진=historic-uk 홈페이지 캡처

런던 대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극소수다.

당시 담당자들은 사망자가 한 자릿수이며 6~8명가량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화재 후 임시 거처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사례 등은 제외됐다.

또 사망자가 적게 집계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불이 너무 뜨거워서 시체가 전부 녹아내려서 구분할 수 없었다. △극빈층이 시민으로 등록되지 않아서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등의 설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고고학자들은 불이 처음 시작됐던 푸딩 레인에서 녹은 도자기 조각을 발견했는데, 이 조각에 근거해 화재 당시 1250도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소방 조직·화재 보험 구축…대화재 기념비 건립
화재 후 런던 재건을 위한 계획서 /사진=historic-uk 홈페이지 캡처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 정상화를 위해 영국에는 화재를 담당하는 소방 조직과 소방차, 화재 보험이 만들어졌다.

낡은 도로가 재건됐고, 화재의 원인 중 하나였던 목조 건물이 사라지고 석조 건물이 들어섰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렌의 50개의 새 교회도 새로 지어졌다.

발화 지점인 푸딩 레인에는 대화재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후 이 기념비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도 만들어졌다. 이 역은 오늘날 Monument(모뉴먼트)역으로, 무전기를 닮아 '워키토키 빌딩'으로 불리는 런던 20 펜처치 스트리트 빌딩(20 Fenchurch Street) 인근이다.

차유채 기자 jejufl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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