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장 퇴색" 국민연금 개혁 첫발부터 두 동강…소득대체율 갈등 격화

류호 2023. 9. 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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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안정 시나리오 18개, 소득대체율 없는 초안
"보험료율 등 구체적 수치 정부·국회로 넘겨"
소득대체율 인상 표기 두고 갈등…향후 뇌관
"2019년 경사노위 개혁 실패 전철 밟을까 우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소득대체율 상향 없는 보험료 인상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국민연금 전문가들이 10개월간 논의 끝에 '더 내고 더 늦게, 그대로 받는' 개혁안을 공개하며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재정안정화 진영과 소득보장성 강화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해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재정안정화 방안만 담은 보고서를 내놓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어렵게 국민연금 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 비율)을 둘러싼 잡음이 향후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연금 개편 방안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어 제도 개선의 초안을 발표했다. 현재 9%인 보험료율 12~18%로 인상, 올해 63세인 지급 개시 연령 66~68세로 상향, 기금운용 수익률 증가를 조합해 적립기금을 2093년까지 유지하는 방안이다.

총 18개 시나리오 중 보험료율은 15% 안팎에 무게가 실렸어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라 결국 보험료율과 지급 개시 연령 결정 등은 정부와 국회의 몫이 됐다. 청년세대를 대표해 이날 공청회 토론회에 참석한 김설 청년유니온 대표는 "광범위한 선택 폭만 병렬해 어떤 안을 두고 논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확실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재정계산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현재 18세인 청년이 미래에 노령연금을 받는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하는 방안이 무엇일지 참고할 수 있는 18개 시나리오를 판단 근거로 제시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재정계산 과정에서 이만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균형 잃었다"며 전날 전문위원직 사퇴한 소득보장성 진영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1일 발표한 국민연금 보험료율별 시나리오 조합 시 기금 소진 시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재정계산위원회가 이날 내놓은 제도 개선안에는 소득대체율 부분이 없다. 노후 소득 강화의 핵심인 소득대체율 조정이 담기지 않은 건 이례적인데, 이유는 그간 논의 과정에서 파행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소득보장성 진영은 2028년 40%(올해 42.5%)까지 낮아지는 소득대체율을 45~50%로 올려야 한다는 내용을 함께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수적으로 우위인 재정안정화 진영은 "담을 경우 인상은 소수안, 유지는 다수안이란 걸 표기해야 한다"고 맞섰다. 소득보장성 진영인 재정계산위원 2명은 이에 반발해 전날 위원직을 사퇴하며 "대안 보고서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가입자 몫으로 공청회에 참가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이 노후생활 안정이란 점을 고려하면 재정계산위는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재정안정화와 소득보장성은 늘 균형 있게 담겼는데 재정안정화 진영이 (소득대체율 인상을) 소수안으로 치부하는 탓에 가입자 추천 몫 위원 2명이 사퇴했고, 이는 재정계산위 책임"이라고 성토했다.


시민단체도 갈리며 장외 여론전… 험난한 연금 개혁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1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국민불신 조장 연금개악 부추기는 재정계산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소득대체율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향후 개혁 과정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합의에 실패했는데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양측의 대립으로 개혁에 실패한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한다. 재정계산위원직을 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소득보장성 강화론을 소수안으로 낙인찍고자 한 재정계산위의 시도는 노후보장 강화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재정안정화 진영인 석재은 한림대 교수는 "소득대체율 인상만이 보장성 강화 방안이고 재정건전성 정책은 재정안정화만 추구한다는 이분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도 두 쪽으로 갈렸다. 소득보장성 진영인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은 공청회에 앞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개혁의 핵심은 노후소득 보장인데 위원회는 재정안정에만 초점을 맞춰 편파적으로 진행됐다"고 성토했다. 재정안정화 진영인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유니온은 연금행동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노후소득) 보장성과 (재정) 지속 가능성이 대립하는 논의 지형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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