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아들, 이승만 아들… 곳곳에서 ‘조용한 화해’
1일 아침 서울 국립 4·19 민주묘지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92) 박사가 탄 차량이 들어섰다. 이 박사가 탄 차는 무궁화와 태극기로 장식된 4·19 민주 영령 묘역을 천천히 지나 유영봉안소 앞에서 멈췄다. 휠체어로 옮겨 탄 이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그는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가 이곳에 잠든 4·19 민주 영령 515위의 영정 사진과 마주했다. 영령들은 63년 전 시간이 멈춰버린 흑백 사진 속에서 대개 교복이나 낡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 박사는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아내 조혜자(81)씨와 함께 앞으로 걸어나가 향을 피웠고,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이화장(이 전 대통령의 사저) 대표 이인수’라 적힌 큼지막한 흰 국화 다발도 따로 올렸다. 그러곤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혹여 실수라도 할까봐 가슴에 품고 다니며 낭독 연습을 반복했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밴 종이였다.
“저는 오늘 63년 만에 4·19 민주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로서 4·19혁명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아울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의 참배와 사과에 대해서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참배가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내 조혜자씨도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께서도 ‘내가 맞아야 할 총알을 청년들이 맞았다’며 울먹이셨다”며 “늘 빚진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생각했다”고 했다. 이 박사는 “내 마음은 우리 국민과 똑같다″며 “우리의 진심을 알아 달라”고도 했다.
1960년 4·19혁명 발생 63년 만에 처음으로 이 박사가 이 전 대통령 유족을 대표해 4·19 민주묘지에서 공식 참배하고 사과했다. 이 박사와 동행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황교안 회장과 문무일 사무총장, 김문수 상임고문 등 관계자 100여 명도 차례로 헌화·분향한 뒤 짧게 묵념했다.
이날 참배에 4·19 관련 단체 회원들이 동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 단체 관계자들은 본지에 “이 박사가 희생 영령 묘역을 살피고 가시도록 국립묘지 측에 사전 부탁을 해 놓았고, 참배를 반대하는 회원들의 시위도 우리가 못 하게 막았다”면서 “과거와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라고 전했다. 이 박사는 2011년 4·19 민주묘지 참배를 시도했으나 당시엔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는 유족 단체의 강력한 거부로 인해 입장조차 못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공식 기록상 1960년 4·19혁명 당시 사망자는 186명, 부상자는 6026명이다. 4월 19일 이후에도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시위가 계속되자 이 전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했다.
이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 황교안 회장은 “미래로 나아가는 사과가 오늘 이루어졌다”고 했다. 문 사무총장은 “이 박사가 최근 ‘세상 떠나기 전에 4·19 희생자들에게 꼭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자주 밝혔고 오늘 성사가 돼 정말 기뻐하셨다”며 “이 전 대통령이 작고하신 지 58년이 됐는데 비로소 구원(舊怨)의 사슬을 끊고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향해서 나갈 초석이 닦였다”고 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4·19 관련 단체들도 따로 만나 사과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참배를 계기로 4·19 단체들과의 접촉점을 조금씩 늘려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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