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심각해진 가짜 뉴스 해악… ‘100년 전 비극’ 잊지 말아야 할 이유
일본 관동대지진 100주년 하루 전날인 지난달 31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제목은 ‘관동대지진 100년, 우리의 불안이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였다. 100년 전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믿었던 민중과 경찰에 의해 한반도 출신 주민들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며, 생명과 직결된 사태로까지 치달을 위험이 있는 유언비어가 최근 발생하는 재해에서도 자주 확산한다는 내용이었다.
1923년 9월 일본 도쿄·가나가와 등 관동(關東·간토) 일대에 규모 7.9 대지진이 발생하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일본인들 사이 퍼졌다. 주택 등 마을 전체가 무너지고 화염에 휩싸인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 같은 소문을 믿은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길거리에 보이는 조선인들을 무작위로 죽인 것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100년이 지난 올해 일본 언론들은 관동대지진과 당시 벌어졌던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예년보다 큰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발달하는 소셜미디어·AI(인공지능) 등이 가짜 뉴스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는 점을 경고하는 기사가 많다. 아사히신문은 1일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정보가 넘쳐났고, 실제로 많은 조선인이 살해당했다”며 유언비어가 학살이라는 큰 비극으로 치달은 과정을 분석한 기사를 냈다.
실제로 일본에선 대규모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크고 작은 가짜 뉴스가 확산되곤 했다. 관동대지진 때엔 지진 발생 한 시간 만에 ‘후지산이 대폭발했다’ ‘도쿄만에 맹렬한 쓰나미가 덮친다’ 등의 그릇된 정보가 경찰 보고에 접수됐다. 지진 발생 약 3시간 후부터 ‘조선인이 방화한다’ 등의 거짓 정보가 경찰에 잇따라 접수되고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가짜였지만 당시엔 공신력 있는 ‘경찰 정보 보고’로 받아들여져 일본 정부도 이 내용을 믿었다.
일본 언론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 재해와 관련한 가짜 뉴스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점점 정교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일으켰던 동일본대지진 때에는 소셜미디어 트위터(현재 ‘X’)에 평시보다 두 배 많은 게시글이 올라왔다고 NHK는 전했다. 사실과 함께 거짓 뉴스도 함께 섞여 번져나갔다. 특히 “정유소 고압 가스통이 폭발하면서 (전국에) 유해 물질 섞인 비가 내린다”는 가짜 정보는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 공유됐다. 2016년 4월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는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며 사자 한 마리가 밤거리를 활보하는 섬찟한 사진이 온라인에 돌았다. 이 사진은 이후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만 이미 2만명이 이 사진을 퍼다 나른 후였다.
소셜미디어로 유언비어의 전달력이 높아졌다면 딥페이크(deepfake·실제와 비슷하게 조작된 디지털 시각물) 등 AI 기술의 발전은 사실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교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9월 소셜미디어에 확산했던 ‘시즈오카 물바다’ 사진이다. 당시 태풍 탈라스로 시즈오카현 일대에 폭우가 왔는데 ‘지역 전체가 물에 잠겼다’는 사진 석 장이 트위터에 게시됐다. 이 사진은 과장된 조작 사진으로 드러났다. 이미 태풍으로 피해가 커진 와중에 트위터에서 빠르게 확산한 이 사진으로 주민들 사이에 공포는 더 커졌다.
2021년 2월 미야기·후쿠시마현 일대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엔 가토 가쓰노부 당시 관방장관이 재난 상황을 비웃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가짜 사진이 트위터에 확산해 물의를 빚었다.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 소속 에치젠 이사오 교수는 “실재하는 인물의 가짜 이미지를 처음부터 만들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가공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마저 (딥페이크를 통해) 가능해졌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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