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한 곳서 성실히 일해야 장기체류... 기업·지자체에 추천권

김경필 기자 2023. 9. 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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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000명서 3만5000명으로
산업현장 인력난 숨통 트일 듯
2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네팔에서 온 외국인근로자들이 입국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5년간 매년 5만~6만명 수준이었던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를 올해 11만명으로 늘렸다.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2023.06.20./뉴시스

정부가 국내에 5년 이상 장기 체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한도를 전년도의 17배 이상으로 대폭 확대했다. 지금까지 외국인 고용 정책은 저숙련 인력을 들여와 단기간 일하게 한 뒤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기 체류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 중에서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고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근로자에게 가족과 함께 사실상 무기한 체류할 기회가 주어진다. 5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교차 검증을 거친 외국인들에게 ‘질서 있게’ 이민 문호를 여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중삼중 안전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불법 체류자는 단속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추방하고, 장기 체류 자격은 합법적으로 장기간 근무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우선적으로 부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과 지자체에 장기 체류 자격을 받을 사람을 추천할 권한을 주고, 이를 통해 체류가 연장된 근로자는 일정 기간 현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장기 체류 자격 추천권을 악용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부당한 처우를 하는 기업은 엄하게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단체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 - 외국인 계절 근로자 69명이 지난해 4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이들은 전남 완도에서 어민 일손을 돕기 위해 들어왔다. 정부는 1일 올해 외국인 근로자 3만5000명에게 국내에 계속 체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숙련 기능 인력(E-7-4)’ 비자를 주기로 했다. /완도군

정부는 1일 외국 인력 정책 위원회 및 외국 인력 통합 관리 추진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외국 인력 확대 및 규제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기존에 1년에 1000명 안팎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주던 ‘숙련 기능 인력(E-7-4)’ 비자를 올해 3만5000명에게 주기로 했다. 지난해 한도는 2000명으로, 1년 만에 17.5배로 늘린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과 기업의 범위도 넓혀, 택배 상·하차 업무와 공항 지상 조업 상·하차 업무, 비수도권에 있는 뿌리 업종 중견기업에 외국인 고용을 허용했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도 이르면 올 연말부터 서울시에 시범적으로 도입된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 고용은 2004년 도입된 ‘고용 허가제’를 근간으로 한다. 고용 허가제는 제조업·농축산업·어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 한해서 중소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업종별로 입국시킬 외국인 근로자의 수는 정부가 정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받고 최장 4년 10개월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출국해야 하고, 이 중 10% 정도만 같은 비자를 한 번 더 받아 6개월 뒤 입국할 기회가 주어진다. 재입국 근로자도 다시 4년 10개월이 지나면 영구 출국해야 한다. 가족을 동반할 수 없고, 영주권 신청도 불가능하다.

반면 숙련 기능 인력 비자를 받으면 국내에서 일하면서 2년마다 법무부에서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또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초청해 가족 단위로 생활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주권자와 비슷하게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5년 이상 국내 체류한 뒤, 일정한 학력과 재산, 한국어 능력 등을 갖추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도 있다.

숙련 기능 인력 비자는 비전문 취업·방문 취업(H-2)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가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에는 매년 선발하는 인원이 1000명 안팎으로 극히 적었다. 정부는 그렇다 보니 대다수의 외국인 근로자가 한 직장에 오래 머물며 숙련도를 높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처우가 좋은 곳을 찾아 직장을 옮겨다니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또 4년 10개월을 채운 근로자들이 출국하지 않고 남으면서 불법 체류자가 양산됐다.

그래픽=이철원

그러나 정부가 올해 3만5000명에 이어 내년 이후에도 계속 숙련 기능 인력 비자를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주게 되면, 앞으로 국내에 터를 잡는 외국인 근로자가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숙련 기능 인력 비자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가 정착해 가족을 초청하게 되면, 외국인이 매년 많게는 10만명 이상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이렇게 외국 인력을 대규모로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산업 현장의 인력난과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내국인만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업이 구인을 했는데도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 ‘빈 일자리’는 지난 5월 기준 21만4000개에 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내국인의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사상 최저였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들이 임금이 낮거나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는 일자리를 포함해 수많은 빈 일자리를 채울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노동법과 최저임금제는 외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부는 이민의 문호는 열되 숙련 기능 인력 비자의 심사는 강화한다. 4년 이상 체류하면서 매년 일정 금액 이상을 벌었고 현 직장에서 2년 이상 고용 계약이 더 남아 있으며 한국어 능력도 일정 수준 갖춘 사람을 선발한다. 또 현 직장을 오래 다닌 근로자, 고용주나 중앙 부처, 시·도의 추천을 받은 근로자에게 가점을 부여할 계획이다. 비자 정책을 담당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고 대한민국에 자발적으로 기여할 경우에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기업이 보기에 우리나라에 정주할 만한 외국인 근로자라고 추천해 주시면, 저희가 E-7-4(숙련 기능 인력 비자)로 전환하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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