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美中 무역전쟁에 불 지핀 건 팩트 아닌 ‘거짓 서사’
우발적 충돌
스티븐 로치 지음|이경식 옮김|한국경제신문|640쪽|3만5000원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 간 전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미국 랜드연구소와 로디움그룹은 “세계 경제에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이 25~35% 감소하고 1조달러에 이르는 외국 자금이 이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역시 GDP가 5~10% 줄어드는 손실을 볼 것으로 봤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80% 이상을 생산하는 대만이 타격을 입으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수급 부족과 비교할 수 없는 반도체 대란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가 쓴 ‘우발적 충돌(Accidental Conflict)’은 이런 미·중 충돌을 막기 위한 고언을 담은 책이다. 그는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10여 년간 벌어진 미·중 간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이 각종 ‘거짓 서사(false narratives)’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분석한다. 양국 정치가들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의 인식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확대됐다”면서 무역전쟁을 일으켰지만, 로치 교수는 근거가 잘못됐다고 봤다. 형식적으로는 대중 무역적자이지만 중국 수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선진국 업체들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역전쟁으로 대중 무역적자는 줄었지만,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그는 미국 경제가 낮은 저축률과 투자 부족, 생산성 향상 지체 등 만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내부 불만이 고조되자 미국 정치가들이 중국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게 무역전쟁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 ‘백도어(backdoor·비밀접근통로)’가 있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했지만 백도어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혁신 능력에서 중국에 뒤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나온 제재였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중국 쪽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수출을 기반으로 양적으로 경제 규모를 키우는 데 성공했지만, 막대한 부채에 기대 성장하는 일본식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봤다. 미국과 반대로 저축률이 너무 높고 소비시장 규모가 작아 경제대국으로서 완성도도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아직 세계적인 지도국이 될 만한 국내적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패권 공유를 요구하고 나선 게 미·중 갈등의 원인이 됐다는 게 로치 교수의 진단이다.
서로 거짓 서사를 주고받으면서 미·중 관계는 신냉전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로치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옛 소련을 상대로 한 1차 냉전에서는 승리했지만, 중국과의 2차 냉전에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력과 혁신 능력에서 중국은 옛 소련과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로치 교수는 미·중이 휴전에 돌입해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들어설 것을 촉구한다. 양국은 시 주석 집권 전만 해도 높은 상호의존도를 바탕으로 협력 관계를 지속해 왔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대미 수출을 통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미국은 값싼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을 끌어올리면서 만성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양 대국이 이런 관계를 복원하고 양국 간 현안을 다룰 미중사무국을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로치 교수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시아 회장을 지낸 ‘중국통’이다. 2012년 예일대로 가면서 모건스탠리를 떠날 때까지 30년 동안 현장에서 중국 경제를 지켜봐 왔다. 경제학자로서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의 이면에 대한 그의 분석은 날카롭다. 미·중 관계 복원에 대한 충언도 이해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중국은 2020년 홍콩 보안법을 도입하면서 국제사회에 제시한 ‘50년 체제 보장’ 공약을 어기고 홍콩을 사실상 통합해 미국 등 서방 국가에 큰 충격을 줬다. 이런 지정학적 도발과 과욕이 중국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미·중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점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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