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뿌리내린 역사와 문화의 전통… 美食의 도시 타이중이 피워내는 꽃
입맛과 교양 모두 챙기는
대만 타이중 여행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台北) 남서쪽 170㎞ 거리에 미식(美食)과 문화(文化)의 도시가 있다. 타이중(台中)이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를 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 대만 중부에 있는 인구 280만 명의 타이중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남부의 가오슝(高雄)과 대만 제2 도시 위상을 다툰다. 대만이라고 하면 흔히 타이베이와 가오슝만 떠올리던 한국인들의 발길이 최근엔 타이중으로 향하고 있다. “한 도시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치장이 아니라 그 토양에 깊게 뿌리내려 피워낸 꽃에 있다.” 타이중 관광여행국의 구호가 이 도시의 지향점을 말해준다.
◇원조(元祖) 버블티 맛보고 싶다면
대만의 대표 음료 버블티(쩐쭈나이차)의 발상지가 타이중이다. 타이베이 등 대만 곳곳에 지점이 있는 음식점 춘수당(春水堂) 본점이 바로 타이중 시구(西區)에 있다. 유명 관광지의 속기(俗氣)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동네 식당 같은 분위기. 춘수당은 차뿐 아니라 각종 음식을 내는 차관(茶館)이기에 우육면 같은 대만 현지식을 합리적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흑당버블티가 유명한 행복당(幸福堂), 흑당밀크티를 처음으로 출시한 타이거슈가(老虎堂)가 춘수당과 함께 타이중 3대 버블티 맛집으로 꼽힌다.
타이중에서 만난 한 타이베이 시민은 “타이중은 유명 프랜차이즈의 원조집뿐 아니라 각종 신생 음식점이 경쟁하는 곳이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타이중 시민의 입맛 수준이 높기에 여기서 승리한 브랜드가 타이베이에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원조 버블티 가게가 타이중에 밀집한 이유다. 버블티뿐 아니라 홍차, 커피, 우유, 빙수,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료를 저마다 개성 있는 방식으로 내놓는 매장이 도처에 즐비하다.
대패로 썰어낸 얼음에 눈알을 붙인 귀여운 모양으로 유명한 요괴빙수는 독특한 콘셉트로 인기 있는 가게. 메이춘뎬터우빙(美村點頭氷)은 2000년에 개점한 빙수 전문점으로 1990년대 한국에서도 맛보던 옛날 얼음 빙수 스타일이다. 망고나 팥 등 다양한 토핑을 선택할 수 있다. 타이중 근교의 동해대(東海大) 목장에서 생산한 유제품은 신선하고 맛있기로 정평이 났다. 한국에서도 ‘마약 샌드위치’ 돌풍을 일으켰던 훙루이전(洪瑞珍) 본점도 타이중에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식 본점은 타이중시 바로 옆 장화현에 있다. 타이중 매장은 중산점(中山店)이다.
◇현지 서민 음식은 제2 시장에서
타이중에 왔다면 제2시장 조식을 꼭 맛봐야 한다고 현지인들은 강력 추천한다. 1917년 대만을 식민 지배하던 일본 당국이 조성한 이 시장에 들어서면, 한국의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는 냄새와 소음이 밀려든다. 차이터우궈누오미창(菜頭粿糯米腸)은 타이중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아침을 해결하는 유명 노점이다.
무를 갈아 반죽해 기름에 부친 무 케이크 뤄보까오(蘿蔔糕)와 찹쌀 소시지(糯米腸), 달걀 프라이 등을 한국 돈 2000~3000원에 모두 맛볼 수 있다. 양은 상당히 많은 편. 맛은 의외로 느끼하지 않고 소화도 잘된다. 바로 옆 라오라이홍차(老顂紅茶)는 1975년부터 영업 중인 홍차 전문점. 살얼음 찰랑거리는 이 홍차를 ‘시장표’라고 무심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한 모금 마시는 그 순간, 그 시원함에 먼저 놀라고 ‘슴슴한’ 가운데 은근한 향기에 다시 놀란다.
여기서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방사형으로 뻗은 실내 골목을 따라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대만식 비빔면인 간몐(乾麵)이 특히 유명한데, 간장에 조려낸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올린 타이중 간몐은 면발은 쫄깃한 대신 중화요리 특유의 향신료 맛이 덜해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돼지고기 장조림을 밥에 올려 먹는 루러우판(滷肉飯) 역시 대만 서민들의 대표 음식. 제2 시장의 루러우판 가게들은 관광객보다 타이중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곳이라 로컬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특히 옌지러우바오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더 좋아하는 만두 가게다. 고기 만두인 러우바오(肉包)와 얇은 만두를 넣고 끓인 훈툰탕은 한국인 입맛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수도에 뒤지지 않는 야시장 열기
타이베이 스린 야시장과 쌍벽을 이룬다는 펑자(逢甲) 야시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놓치지 말자. 인근 펑자대 학생 등 타이중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권이다. 하루 방문객 3만명. 타이중시 관광여행국은 “대만 전체를 통틀어 톱클래스 상권”이라고 했다. 실제 타이중 사람들은 “타이베이에서 유명한 스린 야시장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다.
제2 시장이 현지 서민 음식의 전당이라면 이곳에선 대만 특유의 퓨전 음식 문화를 원 없이 맛볼 수 있다. 기존 중국 전통 음식에 서양식·일본식이 가미됐고 최근엔 한국 음식의 영향을 받은 먹거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가장 유명한 음식점은 일본식 스테이크를 파는 츠구이즈샤오뉴파이 폔자뎬(赤鬼炙燒牛排 逢甲店). 타이중에만 5개 지점이 있어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밍룬단빙(明倫蛋餅)은 1978년부터 영업했다. 단빙이란 밀 전병 위에 달걀을 올리고 여러 재료를 얹어 돌돌 말아 먹는 대만 고유 음식. 주로 아침용 패스트푸드지만 펑자 야시장에선 저녁부터 새벽까지 맛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줄이 아무리 길어도 놀라지 마시라. 초고속으로 반죽을 구워내 금방 빠진다. 베이후이무과뉴나이에서 파는 파파야 우유는 특히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별미다. 파파야는 단맛이 강하지 않아 얼음과 함께 우유에 갈아 넣으면 혀에 부드럽게 감긴다. 펑자 야시장에선 대만식 핫도그(따창빠오샤오창)와 훠궈 등도 맛볼 수 있다.
◇20세기 근대 건축의 명소
한국과 대만은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 강제 지배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제 시기 근대 건축물이 전쟁과 정치적 철거로 상당수 사라진 한국과 달리, 대만은 주요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다. 타이중에서도 옛 기차역을 비롯한 근대 건축물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다. 르네상스풍의 타이중 옛 기차역은 일본 도쿄역과 유사한 양식인데, 바로 뒤에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새 역사와 이루는 신구(新舊) 대비가 서울역과 닮아 있다.
궁원안과(궁위안옌커·宮原眼科)는 여기서 도보로 5분 거리다. 과거 일본인 의사가 운영하던 안과 건물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 디저트 가게로 탈바꿈했다. 외국인보다는 타이베이 등지에서 온 대만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아이스크림이 가장 유명한데 초콜릿과 쿠키 등도 괜찮다. 유럽의 도서관에 온 듯한 인테리어는 ‘인스타 핫스팟’으로 불린다. 궁원안과에서 디저트를 맛봤다면 바로 옆 하천 공원(신성녹천수안랑도)에서 잠시 산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 청계천보다 소담하지만 아기자기한 개울의 조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타이중 대부호였던 린마오양(林懋陽)이 1920년대 지은 일덕양루(一德洋樓)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중국 푸젠(福建) 전통 양식에 지중해식·일본식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물로 인기가 높다. 붉은 벽돌과 아치가 어우러진 회랑은 특히 타이중 사람들이 즐겨 찾는 웨딩 사진 촬영 장소. 린마오양이 자신의 아내에게 주는 선물로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이 저택을 17세기 오스트리아의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연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건축한 미라벨 궁전에 비유하곤 한다.
◇역사와 문화, 자연도 함께 즐긴다
문화 유적이나 박물관·미술관에도 관심 많은 진지한 여행자들에게도 타이중은 친절한 도시다. 동해대 캠퍼스의 루스채플은 대만의 10대 건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푸른 잔디밭 위로 손을 모은 듯한 모양으로 솟아오른 외양이 유명하지만, 다이아몬드 형태의 콘크리트 거푸집을 휘장처럼 늘어뜨린 듯한 내부는 더욱 장관이다. ‘타임’ ‘포천’ ‘라이프’ 등을 창간한 미국의 잡지왕 헨리 R. 루스가 중국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1963년 준공했다. 타이중 루스채플을 지은 헨리루스재단은 1974년 연세대 신촌캠퍼스에도 루스채플을 건축했다. 독특한 디자인이 형제 교회답다.
대만 유일의 국립미술관도 타이중에 있다. 전시실 24개에 다양한 컬렉션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인 국립자연과학박물관, 친메이 미술관 등도 유명하다. 타이중 공자묘, 보각선사는 중국 대륙의 유교·불교 전통이 대만으로 건너와 유지되는 현장이다. 근교의 무지개 마을(彩虹村)은 SNS에 적합한 이국적 색감을 찾는 여행자들에겐 최적의 장소다. 퇴역 군인 황용푸(黃永阜)씨가 2008년부터 자신의 집 담벼락에 평화와 안정, 행복을 기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온 마을을 채우게 됐다.
고미습지(高美濕地)는 석양과 갯벌이 장관을 이룬다. 타이완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특히 높다. 탁 트인 바닷가에 서면 하늘과 햇빛, 바람과 일체(一體)가 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일월담(日月潭)은 대만 최대의 담수호다. 서쪽은 해를, 동쪽은 달을 닮았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새벽 안개, 정오 햇빛, 저녁 석양 등 시간에 따라 물의 빛깔이 변화무쌍하다. 많은 화가와 시인에게 영감을 준 곳이라고. 세계 10대 자전거 도로에 선정되기도 했던 순환도로를 따라 라이딩을 하며 이 풍경을 눈에 넣는 것도 일생에 남을 만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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