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將에서 중공군 작곡가까지… 대한민국에 떠도는 反역사적 유령들
역사고 뭐고 상관 않는 ‘제멋대로’ 기념 사업들
광주광역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공원 같은 반역사적 기념물 설치 사례가 2017년에도 있었다. 그해 7월 울산광역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건축한 울산 학성 왜성에 가토 기요마사 동상을 설치하려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닥쳐 철회했다.
학성 왜성은 1597년 말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 부대가 조명 연합군에 포위됐다가 전멸을 면하고 탈출한 성이다. 학성 왜성은 임진왜란이 오래가면서 가토 부대가 근처에 있는 병영성과 울산읍성에서 석재를 가져와 쌓은 일본식 성이다. 당시 명칭은 학성이 아니라 도산성(島山城)이었다. 지금 왜성 일대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전쟁 막바지에 접어든 1598년 1월과 9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학성 왜성에 주둔한 가토 부대와 혈투를 벌였다. 조선군 사령관은 권율이었고 명군 사령관은 양호였다. 가토 부대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2차에 걸친 전투를 치렀다. 1차전에서 보급로가 완전히 차단된 일본군은 군마를 죽여 피를 마시고 종이를 삶아 먹으며 13일 동안 농성전을 벌였다. 집요한 일본군 저항에 조명 연합군은 공격에 실패하고 철군했다. 그해 9월 다시 벌어진 전투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가토 부대는 성을 불태운 뒤 탈출했다. 1607년 가토 기요마사는 자기 본거지인 일본 구마모토에 성을 쌓을 때 도산성 전투 같은 농성전에 대비해 성 곳곳에 우물을 만들었다.
2017년 4월 울산광역시 중구청은 ‘학성 르네상스 도시 경관 조성 사업 조형물 설치’ 프로젝트를 내놓고 도산성 전투를 재현하는 기념물을 성 안팎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은 10억원이었다. 그런데 그해 7월에 조명 연합군 사령관인 권율과 양호는 물론 일본군 사령관인 가토 기요마사 동상도 세울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동상을 계획한 울산 중구청의 명분은 ‘정확한 시대 상황 전달과 관광객 유치를 통한 경제 활성화’였다. 여론은 “임진왜란 때 가장 잔인했던 적군 사령관 동상은 정서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불가”였다. 결국 제작이 끝나고 설치만 기다리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 동상은 없던 일이 됐다. 지금 학성공원 입구에는 권율과 양호 동상만 있다. 울산 중구청은 “권율과 양호는 기마상이고 가토 동상은 고통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일본 구마모토성에 설치돼 있는 가토 기요마사 동상 자체가 좌상이다.
지금 광주에서는 가토 기요마사 동상 소동보다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정율성은 중공군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하고 6·25전쟁 때 서울까지 내려와 전쟁을 북돋운 중국인이다. 그런데 정율성로라고 도로명 주소를 붙인 거리에 정율성 기념물과 동상을 세운 데 이어 공원을 만들려고 한다.
현재 정율성로에 설치된 동상과 거리 전시장에 적혀 있는 정율성 소개문은 이렇다. “그렇다. 그는 동아시아의 항일 운동 역사를 찬란히 빛내고 세계의 평화를 진정으로 노래한 예술혼이었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동아시아의 해방이 찾아오자 한동안 북한에서 거주하며 음악 활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기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소수민족과 조선족의 음악을 수집, 작곡하는 노력을 하다가….”
“중국의 아리랑 연안송(1938), 팔로군행진곡(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1939), 팔로군에서 항일 투쟁(1942), 문화혁명의 종결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고혈압으로 사망(1976)....”
정율성이 해방 후 북한에서 벌인 행적, 6·25전쟁 동안 벌인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1968년까지 북한 인민군가로 쓰였던 ‘조선인민군행진곡’은 “불의의 원쑤들을 다 물리치고 조국의 완전 독립 쟁취하리라”라고 노래한다. 6·25전쟁 동안 정율성이 지은 군가 제목은 ‘조국의 아들’ ‘인민공화국의 가치’ ‘공군의 노래’, ‘우리는 땅크 부대’ 등등이다.
정율성이 1년 동안 다닌 전남 화순 능주초등학교에는 이미 2015년 ‘정율성 교실’이 설치돼 있다. ‘어린 정율성’인 듯한 인형이 나무 걸상에 앉아 있고 뒷면에는 우리말과 중국어로 정율성을 소개하는 자료가 걸려 있다. 여기에도 정율성이 북한에서 한 행적은 제외돼 있다. 교문에는 정율성 흉상이, 교실 외벽에는 커다란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정율성이 잠시 살았다는 집도 12억원을 들여 정비했다.
가토 기요마사 동상이 논란이 됐을 때 울산 중구청은 “정치적으로 논란의 소재가 돼 안타깝다”고 했다. 정율성 공원에 대해 지난달 28일 광주시장 강기정은 “역사 정립이 끝난 정율성 선생에 대한 논쟁으로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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