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뉴욕과는 다르다
[김경민의 부트캠프] 서울 도심과 교외 지역은 제로섬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이번 독자는 대도시 부동산의 미래에 대한 두 상반된 시선 중 무엇이 맞는지 물었다. 하나는 ‘서울 도심(다운타운)은 슬럼화될 것이기에 교외 아파트 단지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 도심만 살아남는다’고 본다. 질문을 바꿔 보자. 도심이 망하고 교외 지역이 살아남을까, 아니면 도심은 흥하고 교외 지역은 쇠락할까.
나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울 도심과 교외 지역은 수도권의 지역 경제 현황, 교통 인프라, 역사·문화 환경 등 다양한 자원을 고려할 때, 서로 제로섬게임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 전략을 갖고 성장하고 있다.
우리보다 현대 도시의 역사가 긴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살펴보자. 21세기 미국과 유럽 글로벌 도시들의 다운타운은 매우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거주하는 매력적인 장소다. 그러나 1960~1970년대 미국과 유럽 대도시들의 다운타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처절하게 쇠퇴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택시 드라이버’(1976)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의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을 생각하고 ‘택시 드라이버’를 보면 안 된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재정적으로 파산 직전에 몰린 뉴욕, 범죄가 횡행하고 길거리가 지저분한 맨해튼이 배경이다. 열두 살 소녀가 창녀(조디 포스터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다)로 등장할 정도로 맨해튼은 문제 덩어리였고, 택시 기사인 로버트 드 니로가 직접 범죄자들을 단죄한다는 내용이다.
놀라지 마시라. 현재 엄청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1970년대 모습은 포르노 극장들이 줄지어 있고 매춘이 횡행하는 장소였다. 글로벌 금융 수도 맨해튼의 과거는 우리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처참했다.
1970년대에는 뉴욕 다운타운만 문제에 휩싸여 있었던 게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영국 런던 등 서구권 글로벌 도시들의 다운타운은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중산층이 도심을 떠나 교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이주하자 도심 공동화가 발생했다. 쇼핑 시설들도 구매력 있는 중산층을 따라 교외로 옮겨 가게 된다. 그 시절 황량한 곳에 거대한 쇼핑센터가 들어선 이유는 자동차 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교외 거주 중산층을 위한 새로운 상업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의 산업이 서비스업(금융업, IT 산업 등)같이 고급 두뇌를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중산층 거주지 인근으로 회사들이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름 붙이자면 ‘오피스 교외화 현상’이다.
샌프란시스코 대도시권은 실리콘밸리라고 불린다.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들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만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새너제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80㎞ 남쪽에 자리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 곳곳에 거대한 회사들이 위치한다. 1960~1970년대에는 중산층이 도심을 떠나 교외로 이주하고 쇼핑 시설과 기업들도 함께 이주하면서 도심 쇠퇴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도심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제임스 라우즈라는 걸출한 디벨로퍼가 보스턴 다운타운의 황폐한 수산물 시장을 신개념 쇼핑 상가로 뒤바꾼 것이 계기였다. 보스턴은 쇠퇴한 수산물 시장을 부숴버리고 오피스 건물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임스 라우즈는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적응적 재설계 기법(건물의 역사적 모습은 보존하고 내부를 혁신적으로 바꿈)으로 도시 재생을 이끈다. 보스턴 다운타운의 변화는 도심의 역사 자원과 문화 자원을 활용하면 도심을 되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의 이름을 딴 ‘라우즈화(Rousification)’가 세계를 강타한다.
황폐하지만 역사·문화 자원이 있는 도심, 그럼에도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은 젊은층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되기 시작한다. 다운타운의 부활은 1980년대부터 글로벌 도시들에서 어떤 사건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쇠퇴했던 도심이 새롭게 살아나면서 현재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두 질문을 해야 한다. “서울 도심은 정말 1970년대 뉴욕처럼 문제투성이인가?” “일본 다마 신도시가 인구 유출과 노령화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이것이 수도권 신도시에도 곧 닥칠 것인가?”
내가 보기에 서울 도심은 미국이나 유럽만큼 쇠퇴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 있는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가더라도, 자식 세대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비록 건물이 누추하고 낡아 보여도 커뮤니티가 건강하고 오래된 역사·문화 자원이 있다.
서울 도심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다운타운에서 발생한 문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은 여전히 주거지로 매력적이다. 아파트 가격이 그 방증이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주상복합 아파트 가격은 상당한 수준이다. 인근의 경희궁자이아파트 가격대는 잠실 고가 아파트와 거의 비슷하다.
서울 인근 신도시 역시 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을 포함한 외국 교외 지역은 저밀도 베드타운이다. 일거리가 충분하지 않기에, 노령화가 진행되는 순간 쇠퇴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당을 보라. IT 클러스터로 발돋움한 지 오래다. 일산 역시 새로운 미디어 클러스터로 성장 중이다. 일거리가 존재하는 신도시이기에 미래 전망이 나쁘지 않다. 우리와 외국의 차이점을 인식한 가운데 우리 미래를 바라봐야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대안이 나올 것이다.
※부동산 트렌드에 대해 궁금한 점을 jumal@chosun.com으로 보내주시면 김경민 서울대 교수가 골라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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