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너머로 지던 빨간 해, 그 풍경 속을 달릴 때 스치던 냄새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2023. 9.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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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떡갈비
경기 의정부시 자일동에 있는 솔가원의 소떡갈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수도권을 크게 도는데 의정부라는 글자가 보였다.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났다. 잘못 길을 들어 꽤 고생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길이 멀었지만 의정부를 가야 할 이유는 늘 있었다. 수도권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의정부는 미군 부대가 있던 과거와 북한에 가깝다는 지리적 특징, 또 외곽순환도로라는 교통망 확충에 따라 독특한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은 의정부에서도 외곽에 있었다. 낮은 산이 어깨동무를 하듯 정답게 이어진 국도 한쪽에 ‘솔가원’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어깨를 쫙 편 기와집이 푸른 숲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주말이면 커다란 주차장이 차로 꽉 차는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떡갈비’다. 실내로 들어서니 좌우 가득 테이블이 놓였고 간선도로를 타고 모여든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떡갈비에 열광했나 싶을 정도였다. 떡갈비는 오해가 많은 음식이다. 본래 칼로 다져 정성이 많이 들어가지만 분쇄육을 얻기 쉬워지고 또 떡갈비 이름을 단 제품이 많아지면서 손해를 봤다. 나 역시 떡갈비를 도시락 반찬으로 처음 접했다.

도시락 반찬의 최고봉은 꼬마 돈가스였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전 부치듯이 구운 꼬마 돈가스에 케첩을 잔뜩 뿌리면 시간이 지나 눅눅해졌다. 오히려 밥 반찬으로 먹기에는 그 편이 나았다. 그다음은 비엔나소시지였다. 어머니는 칼집을 대충 내거나 혹은 아예 내지 않고 휙 구워서 반찬으로 담았다. 새롭게 나타난 도시락 반찬 중 하나가 떡갈비였다. 꼬마 돈가스처럼 원래 음식을 흉내만 낸 것에 가까웠지만 ‘갈비’라는 이름 때문인지 괜히 마음이 설렜다. 소시지나 돈가스와 달리 나름 한국 음식이었기에 도시락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떡갈비가 반찬에 올라간 날은 “딱 하나만”이라는 멘트와 함께 다가오는 친구가 많았다. 그 시절 부산 영도에서는 도시락 반찬으로 진미채와 콩자반, 그리고 봉지 김 정도만 싸오는 친구가 많았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는 결손 가정 비율이 꽤 높았고 도시락을 챙겨주는 이가 할머니이거나 아버지인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냉장고 반찬 통에 있던 것을 대충 꺼내 도시락에 담아주지 않고 아침부터 도시락 반찬을 따로 해서 싸주는 것은 생각보다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한바탕 반찬 나눔을 하고 나면 내 반찬 통에는 떡갈비가 한두 개 남고 대신 진미채가 한가득 쌓이곤 했다.

떡갈비는 어릴 때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 때문에 기대가 크지 않은 음식이었다. 고기를 갈아 뭉친 뒤 구워내는 것이라면 함박스테이크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찰나 떡갈비가 철판 위에 올려 나왔다. 철판 밑에 가스불을 넣어 떡갈비가 식을 염려는 없었다. 그 열기를 따라 익숙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방학마다 놀러 갔던 시골의 저녁나절, 멀리서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동생과 나는 그 소리의 원천으로 힘껏 뜀박질을 했다. 밥이 익는 구수한 향, 작은 부루스타 위에서 끓던 찌개 한 냄비, 저 멀리 논밭 너머로 지던 빨간 해, 그 풍경 속을 달릴 때 몸에 스치던 냄새가 떡갈비 어딘가에서 나는 것 같았다. 젓가락으로 떡갈비를 찢어 입에 넣었다. 돼지떡갈비는 소에 비해 색과 맛이 옅었다. 대신 식감이 좀 더 부드럽고 촉촉해서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먹기에는 오히려 나아 보였다. 소떡갈비는 고소한 향의 밀도가 달랐다. 한 점 뜯어 입에 넣자 왜 이 음식이 함박스테이크나 햄버거와 다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한우 갈비살을 일일이 다져 뭉친 떡갈비는 씹을 때마다 탄력 있는 식감이 느껴졌다. 고기 사이사이에는 총총히 썬 채소가 들어 있어 맛이 다채로웠다. 마치 유럽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채색한 유리 조각 너머로 빛이 비쳐 하나의 큰 그림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듯이, 재료를 일일이 다져 뭉쳐냄으로써 각 재료가 품은 맛 이상의 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탄불에 초벌해 구운 덕분에 노릇하게 구운 맛이 확실했고 고기가 너무 엉기거나 혹은 풀어지지 않았다. 이 떡갈비를 먹어치우기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보다 쉬웠다. 말끔하게 비워진 테이블만 남고 잔칫집 같은 흥겨운 포만감이 뒤를 이었다. 차에 올라타 다시 핸들을 잡았다.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멀었지만 엑셀을 밟을 때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솔가원: 한우 소떡갈비 2만9000원, 돼지떡갈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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