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정국, 타투에 표현한 사주...태어날 때부터 노래할 운명이었나
[김두규의 國運風水] 허균과 정국으로 본 사주와 운명의 관계
‘홍길동전’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고전’이란 그런 것일까? 작가는 관상·기문·둔갑·풍수 등을 버무려 일종의 ‘협객 소설’을 만들었다. 그래서 재미있다. 소설에는 갈등의 직접적 계기가 있다.
갈등은 초란(홍대감의 첩)의 사주를 받은 관상 보는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초란에게 매수된 관상녀는 홍대감(길동의 아버지)을 찾아가 “길동이 성공하면 왕이 되지만, 실패하면 큰 후환을 가져올 관상”이라고 말한다. 초란은 이 발언을 빌미로 길동을 죽이려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길동은 관상녀를 죽이고 집을 떠난다. 이후 그는 조선에서 수천 리 떨어진 ‘제도’라는 섬에 안착하며, 일봉산 아래 명당을 찾아 아버지 홍대감 유택을 정한다. 그 명당 발복으로 길동은 율도국을 정복하고 왕이 된다. 소설의 결말이다.
소설 ‘홍길동전’은 허균(1569~1618) 생존 당시의 풍수·관상·사주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허균은 소설 속에서 관상은 부정적으로, 풍수는 긍정적으로 소개한다. 관상 자체가 아니라 관상녀의 나쁜 마음이 문제였다. 허균은 또 사주에 관심을 보여 자신의 사주 평을 문집에 남기기도 한다. 당시 사주설 내용이 어떠했는지를 엿보는 귀중한 자료이다. 흔히 사주설 내용이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즉 시대를 반영하는 시대 문화이다. 허균은 자기 사주에 대해 장문의 평을 쓴다. 그 일부이다.
“나는 기사년, 병자월, 임신일, 계묘시에 태어났다. (...) 참으로 나의 운명 곤궁하구나. 금(金)이 목(木)을 치니, 몸이 항상 허약하고 (...) 꾀하는 일마다 이루지 못하네. 말을 함부로 하여 남들과 부딪히니 (...) 어려운 액운을 만나 죽음에 이르겠구나….”
왜 그는 자신의 사주를 나쁘게 해석하면서, 자신을 운명의 덫에 가두고 말았을까? 현재 통용되는 사주술로는 동의할 수 없는 문장들이다. 20세기 중국 최고의 사주학자이자 해방 이후 한국 사주술에 큰 영향을 끼친 이가 원수산(袁樹珊·1881~?)이다. 원수산이 허균의 사주를 감정했다면 “오행을 두루 갖춘 큰 지도자” 사주로 칭찬했을 것이다. 사주·풍수·관상 등은 미신과 과학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일종의 ‘시대 문화’이다. 문화이지만 믿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믿음은 한 사람의 성공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막내 정국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 7월 25일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BTS 정국의 첫 솔로 싱글 ‘세븐(Seven)’이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로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한 달 지난 8월 24일,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가 발표한 ‘위클리 톱 송 글로벌’도 ‘Seven’이 1위라고 발표한다. 실로 대단하다. 전 세계 팬들이 정국의 일거수일투족을 화젯거리로 삼는다. BTS 다른 멤버 지민과 달리 그는 “운명을 믿는다”. 그는 팔의 타투에 자신의 사주를 표현한다. 사주와 타투의 새로운 조합이자 문화이다.
정국의 타투(문신) 가운데 ‘시계→사슬→마이크→음표’로 이어지는 타투가 있다. 시곗바늘은 3시 23분을 가리킨다. 태어난 시각이다. 시계는 마이크 줄(사슬)로 이어지는데 마이크의 목적어는 음표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래할 운명”을 상징하였다. 그는 또 타투에 ‘110604′를 새겼다. 2011년 6월 4일, 그가 부산에서 서울로 오던 때를 표기한 것인데 그때가 길일이었다고 믿는다.
허균은 “액운으로 죽을 팔자”라는 ‘해명문(解命文)’을 남겼다. 반면 정국은 “노래할 운명”을 축복하는 타투를 팔에 남겼다. 운명은 그 주인의 생각대로 흘러간다. 사주와 풍수는 과학도 미신도 아니고 하나의 문화이다. K컬처의 일부로서 전 세계에 상품화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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