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19] 공감이 힘든 이유
독서광으로 알려진 빌 게이츠가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1400페이지가 넘는 이 벽돌 책은 학문을 통섭하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의 폭력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추적 관찰한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더 나아가 다양한 통계를 통해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덜 폭력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내 의문은 이 많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폭력이 ‘전혀’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늘고 있다고 생각할까 하는 점이다. 학교 폭력 뉴스가 뜰 때마다 “우리 때는 저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라고 사람들은 되묻는다. 과거의 기억이 연한 아메리카노라면 현재의 기억은 진한 에스프레소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과 SNS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정확히 말해, 알고리즘이 우리를 인도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리 이동한다는 연구도 있다. 거짓이 진실보다 빠르게 퍼지는 것은 인류가 ‘혐오, 전쟁, 살인, 성범죄’ 같은 단어에 더 빨리 반응하기 때문이다. 주식 폭등보다는 폭락이, 스타의 결혼보다 이혼 기사에 먼저 반응한다는 뜻이다. 수많은 선플 속에 단 하나 악플만 있어도 그것은 우리를 무너뜨린다. 불행히 인류에겐 선천적 ‘부정 편향’이 있다.
위대한 석학들은 이런 편향을 바로잡으려 수많은 시도를 했다. 다만 이 시도는 번번이 우리의 편향성을 증폭하는 다양한 알고리즘에 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위험을 알아차리고 피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고 행복하게 하는 건 폭력과 혐오가 아닌, 긍정과 공감임을 깨달아야 한다. 잡초는 제거하지 않으면 무성히 자라 우리를 살리는 곡물을 결국 초토화한다. 잡초는 물을 주지 않아도 쑥쑥 자란다. 폭력과 혐오 역시 그렇다. 공감이 힘든 건, 물을 주고 거름을 줘야 자라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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