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156개국과 772회 교섭… 재계 “한 곳이라도 더 찾아가 설득”

곽도영 기자 2023. 9. 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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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석 달 앞으로
11월 28일 파리 최종 결정 앞두고… 기업인들 ‘무박 2일’ 출장 불사
새로운 사업 모색하는 기회 삼기도
사우디-이탈리아와 삼파전 치열… “경쟁국과 결선 투표까지 염두”
《부산 엑스포 결정, 석달 앞으로
61조 원의 경제 효과가 기대되는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기업인들은 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2년여간 156개국을 상대로 유치전을 펼쳤다. 11월 28일 부산은 샴페인을 터트리게 될까.》




“이름도 못 들어봤던 나라들을 1박 2일로, 아니면 ‘무박 2일’로도 숱하게 다녔죠.”

8월 말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중남미 출장에서 막 돌아온 한 4대 그룹 고위 임원은 “바로 다음 주(9월 첫째 주) 유럽 출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민간위원으로 뛰고 있는 주요 그룹 기업인들은 8월 16일 기준 총 109개국을 해외 출장으로 방문했다. 국내로 초청한 국가들을 포함하면 156개국과 만났다. 교섭 횟수는 총 772회에 이른다. 2021년 7월 13일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 창립 이후 764일간 하루에 한 번씩은 교섭을 진행한 셈이다.

2030 엑스포 개최국은 11월 28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최종 선정된다. 정부와 산업계가 2년여를 함께 준비해 온 ‘결전의 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숨가빴던 지난 2년의 여정만큼 남은 기간도 경쟁국들과의 치열한 ‘전쟁’이 예상된다.

● “비행기가 집처럼 익숙해졌다”는 기업인들

지난해 9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은 파나마로 날아가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에 엑스포 유치 지원을 요청했다.
기업 총수들도 예외는 없었다. 유치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올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프레젠테이션(PT)에 나선 4차 BIE 총회에서 ‘목발 투혼’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번 출국 때마다 국가별로 고려할 특성과 한국의 세일즈 포인트를 브리핑 받으며 일일이 보완하느라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무박 혹은 1, 2박에 서너 국가를 도는 출장 행군을 이어 오면서도 교섭국 대표를 만나면 끈질긴 설득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 그도 6월 파리 출장과 곧바로 이어진 장기 출장을 마치고는 “이번엔 처음으로 체력적으로 힘들더라”라고 주변에 토로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대표도 민간위원으로 뛰면서 ‘역대급’ 해외 일정을 소화해 왔다. 1국가당 1표가 주어지는 BIE 총회 특성상 한국과 교류가 전혀 없다시피 했던 소국과 도서국들에도 직접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파나마 대통령궁을 찾아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을 접견했다. 지난해 10월 정 회장은 에두아르트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를, 구 대표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각각 현지에서 만나 ‘인증샷’을 남겼다.

총수들이 앞장서 현장 출격에 나서면서 기업들도 유치 전략 마련에 사활을 걸었다. 한 주요 그룹 계열사 사장은 “현지 유치를 나가 보면 결국은 고려할 점이 세 가지”라며 “첫째,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카드가 뭔가. 둘째, 우리가 그 나라에서 수입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가. 셋째, 그 나라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올해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 회의소 회장·왼쪽)은 대통령 특별사절 자격으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를 예방했다.
실제 기업들은 출장에 앞서 방문하는 국가와의 투자 협력 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주요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지 법인이나 교류가 없었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엑스포 유치 출장을 통해 예상치 못한 사업 물꼬를 터 오는 경우도 생긴다. 삼성은 글로벌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 일환인 정보기술(IT) 인재 양성 기회를 넓혔고, SK는 비상 통신망 사업과 수소 등 차세대 사업 협력을 늘렸다. 현대차와 LG는 현지 대리점 등 판매망 확장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리튬, 텅스텐 등 그간 교류가 없어 미처 채굴되지 않았던 신흥국의 자원 공동 개발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일각에서 기업들이 엑스포 유치 활동에 치중하느라 부담이 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며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그간 미지로 남아 있던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을 이 기회에 만나며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 ‘네옴시티’의 리야드, ‘친환경’ 내세운 로마

지난해 10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에두아르트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최종 투표 무대에 오를 후보지는 대한민국 부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 등 3곳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국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한국 유치위원회가 특정 BIE 회원국에 방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곧바로 사우디 유치위 인사들이 같은 곳을 찾는 등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치위 관계자는 “유치 활동 초기에는 엑스포 응원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방문 국가와 성과를 대외에 홍보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지금은 그조차도 전략 노출이 될 수 있어 해외 활동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했다.

가장 강력한 경쟁국인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 통찰 있는 내일을 위한 동행’을 엑스포 주제로 밝히고 있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고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는 그간 석유 생산에 의존해 온 경제 시스템을 바꾸려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엑스포 개최는 사우디로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셈이다. 이에 사우디는 BIE 회원국들에 천문학적인 ‘오일머니’를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30년까지 사막 위에 1조 달러(약 1323조 원)를 들여 서울의 43배에 이르는 친환경 미래 도시를 짓겠다는 네옴 프로젝트 역시 대표적인 세일즈 포인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하는 회원국들이 줄을 서 있어서다. 하지만 주류 판매 금지, 대중교통 등 열악한 인프라, 여성 인권 억압 등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리야드의 한계로 꼽힌다. 여기에 국제 인권단체들이 최근 사우디가 에티오피아 난민 655명을 집단 학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일각에선 사우디가 대대적으로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면서 ‘스포츠 워싱’(스포츠로 부정적 이미지를 세탁)을 시도하는 것처럼 ‘엑스포 워싱’을 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구광모 (주)LG 대표(왼쪽)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를 예방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또 다른 후보지인 이탈리아 로마는 ‘사람과 땅: 도시 재생, 포용과 혁신’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탈리아는 2015년 이미 밀라노 엑스포를 개최한 경험이 있다. 2030년 엑스포에는 부산, 리야드에 비해 뒤늦게 출사표를 냈지만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세를 확장하고 있다. 엑스포 전시관마다 청정에너지 생산시설을 둬 엑스포 자체를 ‘역대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특정국 지지 의사 안 밝힌 나라 여전히 많아

LG그룹의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부산엑스포 유치 응원 옥외광고. LG 제공
대한민국 부산은 지난해 9월 7일 BIE에 유치계획서를 제출하며 공식 후보국이 됐다. 부산엑스포의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K컬처, 자유와 협력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글로벌 아티스트 BTS가 공식 홍보대사로 뛰고 있으며 가수 싸이가 경쟁 PT 연사로 나서 화제가 됐다. 앞서 4월 BIE 실사단 방문 당시 부산 시민들이 부산역 광장을 가득 메우며 엑스포 유치 열기를 생생히 전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산하는 부산엑스포의 경제 효과는 총 61조 원이다. 43조 원 규모의 생산 유발 효과와 18조 원 규모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를 합친 숫자다. 50만 명의 대규모 고용 창출도 기대하고 있다. 개최 비용은 약 6조5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번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한국은 올림픽과 월드컵, 엑스포를 모두 개최한 7번째 국가가 된다. 윤 대통령은 6월 파리 4차 경쟁 PT에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엑스포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재용 회장(왼쪽)과 최태원 회장이 올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부산엑스포 공식 리셉션에서 최 회장의 목발을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각 사 제공
결전의 날엔 5차 경쟁 PT 종료 직후 BIE 회원국 181개국의 투표가 시작된다. BIE 대사는 회원국 한 곳당 3명이다. 1국 1표 원칙이며 국가별로 대사 1∼3명이 들어가서 대표로 1명이 버튼을 누르는 비밀 전자투표 방식으로 진행된다. 복수의 대사가 함께 들어가는 이유는 공식적으로 특정국 지지 선언을 한 회원국의 경우 대표 투표자가 이를 이행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종 투표까지 석 달이 남지 않은 지금도 특정국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국가들이 많다. 결국 투표 당일 각 회원국 대사들의 손에 유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치위 관계자는 “당일 1차 투표에서 특정 후보국이 득표 3분의 2 이상을 얻지 못하면 1차 투표 1·2위 국가들이 곧바로 결선 투표를 진행해 개최지를 선정하게 된다”며 “현재로선 한국과 사우디가 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돼 결선 투표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파리 BIE 총회에 맞춰 지원한 래핑 차량들이 개선문 앞에 늘어서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투표일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민간 유치위원인 기업들의 하반기(7∼12월) 유치전 행보도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그룹 총수들도 오지와 벽지를 가리지 않고 촘촘한 출장 일정을 짜고 있다. 정부는 다음 주부터 BIE 총회가 열리게 될 파리 현지에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다.

재계 관계자는 “중간 판세 점검에서 사우디와 한국이 팽팽히 접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종 결선이 100일 안으로 다가온 만큼 한 곳이라도 더 찾아가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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