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는 그들을 외면한 적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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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교사인 '나'는 자신이 선생님이 아닌 '보육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주승이가 어린이집에서 이상행동으로 실내 배변을 해도, 그런 주승이를 보며 다른 학부모들이 항의를 해도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체할 뿐이다.
어느 날 주승이의 배에 나 있는 크고 뚜렷한 멍 자국을 본다.
작고 마른 아이의 배를 한 곳만 집요하게 내리치는 어른의 손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경찰에 신고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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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번째 수록작인 안보윤의 단편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는 2020년 16개월 아이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동과 장애인, 노인, 불법 취업자 등 사회적 약자를 주제로 소설가 8명이 쓴 단편소설 8편을 엮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 ‘틀딱’, ‘짱개’, ‘급식충’ 등 혐오 표현을 스스럼없이 던지고, 이들을 위한 주거 시설 등을 지으려고 하면 극렬하게 반대한다. 각 소설에는 외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조남주의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는 노인 혐오를 다뤘다. 소설은 백은빌딩 옆에 있던 낡은 상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요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병들고 늙은 이들은 서영동의 골칫거리이자 혐오의 대상이 된다. 경화도 요양원을 반대하던 이 중 한 명이었다.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그는 서영동 사교육의 중심인 백은빌딩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가 인지 저하로 판명되자 태도가 변한다. 경화는 스스로에게 한심한 감정을 느끼며 공사장을 빠져나온다.
소설 속 몇몇 주인공은 이중적이고 이기적이다. 그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 그들의 변화는 묵직한 의미를 갖는다. 엮은이들(이혜연 김선산 김형태)은 머리말에서 “‘각자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같이 함께 있는 것’을 지향하자. 다시 계속해서 희망하는 태도를 갖자”며 “소설(小說)의 ‘소’는 작은 존재들을 품어주는 소설의 태도에서 온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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