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불면의 밤, 내 안의 생체시계에 무슨 일이…

이호재 기자 2023. 9. 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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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눕기 전까진 피곤해 죽겠는데요. 불을 딱 끄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져요."

50대 영국 여성 클레어는 런던 가이병원 수면장애센터 전문의인 저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성인 10명당 1명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데도 수면장애를 단순히 잠을 설쳤다고 무시하는 실정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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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의 신경의학적 위험성 경고
올빼미족 생활, 일상 망가뜨리고… 몽유병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무한경쟁 사회가 수면의 질 낮춰… 잘 자려면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
◇잠이 고장 난 사람들/가이 레시자이너 지음·김성훈 옮김/448쪽·2만2000원·시공사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새벽까지 잠에 못 드는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잠이 고장 난 사람들’의 저자 가이 레시자이너는 “현대인의 생체시계는 들쭉날쭉하다. 늦어지거나 빨라지고, 심지어 멈추기도 하는 ‘잠이 고장 난’ 상태”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침대에 눕기 전까진 피곤해 죽겠는데요. 불을 딱 끄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고 정신은 말똥말똥해져요.”

50대 영국 여성 클레어는 런던 가이병원 수면장애센터 전문의인 저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클레어는 5년 동안 끔찍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오늘도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면 거실로 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부엌을 뱅뱅 돌았다. 다시 방으로 가서 잠자려 했지만 실패하기 일쑤였다. 잠들어도 1, 2시간이면 눈이 떠졌다.

저자는 오랜 상담 끝에 클레어가 잠을 못 이루는 건 과다각성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5년 동안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 클레어가 직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부담감에 시달린 게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클레어에게 카페인을 섭취하지 말고, 집 안을 어둡게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또 오후 11시가 되면 목욕을 하고, 오전 6시엔 꼭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도 처방하며 스트레스 상담을 했다. 9개월 후 클레어는 불면증에서 해방됐다. “잠이 사람의 모든 걸 바꿔요. 잠이 괜찮아지니까 진짜 다 좋아지는 느낌이더라고요.”

신경의학적 측면에서 수면장애를 다뤘다. 저자는 수면장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는 4일에서 17일, 쥐는 11일에서 32일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 미군은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잠들지 못하게 고문했다. 눈을 1분이라도 붙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면 수감자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적국의 기밀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성인 10명당 1명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데도 수면장애를 단순히 잠을 설쳤다고 무시하는 실정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저자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들은 관타나모 수감자들만큼 괴롭다”.

수면장애의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수면위상지연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아침엔 졸리고 저녁엔 쌩쌩하다. 낮과 밤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이들을 ‘올빼미족’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은 일상을 망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뇌가 휴식을 취하는 비(非)렘(REM)수면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몽유병을 겪는다. 몽유병 환자 중엔 자신도 모르게 밤에 일어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경우도 있다. 수면무호흡증에 걸리면 다양한 합병증에 시달리고, 기면병 환자는 낮에 걷다가 갑자기 쓰러져 잠들기도 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이유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의식을 통제하는 이마엽, 감각을 처리하는 마루엽, 각성을 조절하는 신경핵 등 뇌 안의 다양한 기관이 수면에 영향을 미치지만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는 것. 다만 저자는 자신이 많은 환자를 검진하고 상담한 결과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수면장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가 몇 명인지, 연봉이 동료보다 높은지, 친구보다 배가 나왔는지 같은 비교에 덜 집착할수록 수면장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은 못 자면 죽는다. 삶에서 잠이 필수라는 명제엔 반박의 여지가 ‘절대’ 없다”고 강조한다. 잠을 잘 못 자는 이들은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양을 99마리 세고, 자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시거나 비싼 침대와 베개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잠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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