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전 유커 특수 쉽지 않지만, ‘노재팬’ 반사이익 새 변수
돌아온 유커, 한국경제 도움 될까
면세점 중국인 관광객 매출 16% 증가
6년여 만에 유커가 돌아오면서 관광·산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국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이 때문에 2016년 800만명이 넘었던 중국인 관광객 수는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뱃길마저 막히면서 이듬해에는 17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2016년 120만9106명(507회)으로 정점을 찍었던 제주 크루즈 관광객도 이듬해 18만9732명(98회), 2018년 2만1703명(20회), 2019년 4만6000명(29회)으로 급감했다.
그러다 지난달 10일 중국 문화여유부가 사드와 코로나19를 계기로 금지했던 한국을 비롯한 78개국에 대한 단체관광을 허용키로 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로 끊겼던 뱃길은 다시 열리고 있다. 지난달 11일 중국 상항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선 53척이 제주도(제주항·강정항)에 기항을 신청했다. 같은 날 중국 칭다오에서 출발한 카페리 뉴골든브릿지 5호가 11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 도착했다. 웨이하이·칭다오 등 중국 8개 도시와 인천을 오가는 한·중 카페리의 승객 운송 재개는 2020년 1월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매출 상승세에 면세업계는 유커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롯데면세점은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제주도에 대규모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태운 크루즈선의 기항이 잇달아 예정된 만큼 지점별 마케팅 프로모션과 브랜드 개편에 나설 방침이다. 신라면세점은 통역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중국인 전용 프로모션 등 다양한 세일 행사를 펼친다. 이석춘 호텔신라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하는데 시일이 소요되고, 여행사가 상품을 개발해 모객하는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체관광 허용이 매출로 이어지기 까지는 최소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국 최대 연휴인 국경절 연휴(9월 29일~10월 6일)를 기점으로 유커의 귀환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업계에도 활력이 돌고 있다. 제주관광공사는 연말까지 4개월간 1만5000명∼2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제주도에 기항 신청이 들어온 중국발 크루즈선은 지난달 18일까지 264척(전체 선적 334척)에 이른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유커가 국경절 연휴 때 본격적으로 제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내 거주 중국인 청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9월 1일부터 3일까지 2박 3일간 재한 중국 SNS기자단 ‘한유기’ 제주 팸투어를 진행하며 9월 15~17일 광저우 지역 광동성 국제여유산업박람회에 가서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중국서 ‘K-관광로드쇼’ 개최 계획
뚝 끊겼던 중국의 단체관광이 시작되면서 매출이 느는 등 당장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사드 보복 이전처럼 국내 관광·산업계가 ‘유커 특수’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은 54만명으로 지난해(7만명)보다는 늘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80만명)과 비교하면 80%가량 급감한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든 항공편이 급증하기 어렵고, 한·중 관계가 오랫동안 경색된 탓에 관광객이 단기간에 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다시 운행을 시작한 한·중 카페리의 승선률도 20% 선에 머물고 있다. 최용석 한중카페리협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전처럼 승선률이 80% 정도까지 오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근 중국의 경제 지표가 악화일로를 걷는 것도 걸림돌이다. 청년실업률은 20%를 돌파했고, 부동산 시장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중국의 7월 소매 판매는 2.5% 증가에 그쳐 전월(3.1%)에 비해 증가율이 둔화했다. 경기 악화로 중국인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얘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의 부동산발(發) 경기 침체로 중국인의 소비 여력이 줄어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추세”라며 “우리나라 역시 물가 상승으로 화장품·의류 등 가격이 올라 중국인이 예전처럼 대량 구매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열풍이 시들해진 것도 사실이다. 사드 사태 후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장기화되면서 중국 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트 방영이 줄어 자연스레 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한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현지에서 한국 콘텐트가 인기를 끌어야 제품을 협찬하고, 판매로 이어질텐데 한한령 이후 이 같은 경로가 아예 막혔다”며 “그 빈자리를 값싼 중국산 화장품이 대체하면서 일부 최고가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양국 간 교류가 줄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줄어들자 여행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한 마케팅 리서치 업체가 중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인이 여행하고 싶은 나라 1위는 일본(16%)이었다. 2위는 러시아(13%), 3위는 싱가포르(12%)였다. 한국은 6%로 영국·미국 등과 공동 5위에 그쳤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 수도 일본이 압도적이다. 중국의 관광포털 취날 조사에 따르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4개 도시에서 출발하는 하반기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은 103개였다. 반면 일본행 단체관광 상품은 이보다 9배 이상 많은 978건이었다.
다만 관광·산업계에서는 최근 일본 오염수 관련 사태로 한국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중국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현지에서 ‘노재팬’ 운동이 일면서 일본을 향하던 중국인들의 행선지가 한국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12년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으로 노재팬 분위기가 이어졌을 때 우리나라를 찾는 유커 수가 급격히 늘어난 바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대부분 제주를 찍고 일본으로 가는 게 일반적인데 중국에서 반일 운동이 계속되면 일본 코스를 취소하고 국내에 더 머무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유커 관광객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경절 연휴에 맞춰 13~17일 중국에서 ‘K-관광로드쇼’를 연다. K-뷰티·패션·쇼핑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한국방문의 해’를 계기로 청와대 관광 랜드마크 10선과 다양한 K-컬처 연계 관광상품이 필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민관의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말했다.
허정연 기자, 제주=최충일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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