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사 “4·19 희생자·유족에 위로·사과, 국민 통합 계기 되길”

김준영 2023. 9. 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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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아들 이인수 박사 4·19묘역 참배
지난 3월 26일 이영일·한화갑 전 의원 등 4·19 세대 각계 원로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을 맞아 묘소를 참배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로서 4·19혁명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참배가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92) 박사가 1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에 참배했다. “희생자와 유족에게 꼭 사과하고 싶다”는 이 박사의 오랜 요청과 “세월 속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게 역사의 진전”(박훈 4·19혁명공로자회장)이란 4·19혁명 단체의 전향적 태도로 성사됐다. 4·19혁명 이후 63년 만의 첫 공식 참배였다.

이 박사는 이날 오전 10시 휠체어를 타고 묘역을 찾았다. 부인 조혜자 여사와 이승만기념사업회 임원 등이 그를 따랐다. 고령으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음에도 그는 참배 전 취재진에 먼저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11년에도 참배와 사과를 위해 이곳에 오려 했지만 입구에서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는 4·19 단체 회원의 거센 항의를 받아 결국 들어오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로부터 12년. 이 박사는 “감개무량하다. 내 마음은 우리 국민과 똑같다”며 “나도 4·19다. 우리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유영봉안소 안에 들어선 그는 헌화와 분향을 위해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기념사업회 임원 세 명이 부축해야만 설 수 있을 정도로 거동이 편치 않았다. 이 박사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이화장 대표 이인수 추모’라고 적힌 꽃을 4·19혁명 희생자 영위 앞에 놓았다. 분향할 때는 떨리는 손에 향이 부러지기도 했다. 이 박사는 세 번 깊이 고개를 숙인 뒤 다시 휠체어에 앉았다.

1948년 7월 24일 취임 선서를 하는 이 전 대통령. [중앙포토]
이어 이 박사는 미리 준비해온 사과문을 품에서 꺼내 읽었다. “저는 오늘 63년 만에 4·19 민주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명복을 빌었다”며 “오늘 저의 참배와 사과에 대해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여사는 “이 전 대통령은 4·19혁명 당시 부상 학생들을 만난 뒤 차 안에서 ‘내가 맞아야 할 총알을 우리 애들이 맞았다’며 통곡하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참배에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 40여 명이 함께했다. 문무일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이 전 대통령은 4·19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지었다”며 “이번 참배는 진심으로 4·19혁명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매듭을 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4·19혁명은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부가 여당인 자유당의 이기붕씨를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를 조작하자 학생들이 시위하다가 희생된 사건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한 뒤 이튿날 사임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망명 후 1965년 세상을 떠난 뒤 고국에 안장됐다.

63년간 풀리지 않은 근현대사의 비극이 ‘화해의 역사’로 바뀔지 주목된다. 12년 전 참배를 거부했던 4·19혁명 단체의 기류도 과거와 달라졌다. 박 회장은 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사전에 이 박사 측에서 참배해도 되냐고 묻기에 ‘좋다. 영령들 앞에서 빌라’고 말했다”며 “지속적인 사과 요청에 더해 오늘 사과하는 것을 보면서 진정성을 느꼈다. 진전 있는 대화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4·19혁명공로자회는 민주혁명회·혁명희생자유족회와 함께 4·19와 관련해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세 공법 단체 중 하나다. 박 회장은 ‘12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물음엔 “지금도 참배를 반대하는 회원이 많았다”면서도 “우리가 언제까지 서로 화해와 용서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회원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4·19혁명 당시 고3이었던 내가 올해 83세”라며 “이 박사가 용서를 빌고 참회를 하니 우리도 이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모두 평가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게 국가 이익과 발전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두 단체의 회장도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이 박사 측과 세 단체 측이 조만간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날짜를 조율 중에 있다”고 전했다.

양측의 대화는 이 전 대통령 재평가 기류 속에 성사됐다. 지난 3월엔 이영일·한화갑 전 의원 등 4·19혁명 참여 인사 50여 명이 이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게 이승만과 4·19의 화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 손녀인 김미 김구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대통령실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오찬에서 “후세 사람들이 자꾸 편을 가르는 것 같아 후손으로서 안타깝다. 대한민국은 하나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발족한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이 박사의 추모는 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통화에서 “위원회 역시 기념관을 건립할 때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 등 이 전 대통령의 어두운 역사도 모두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사과할 건 사과한 이 박사의 참배는 바람직하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 박사의 노력이 역사에 대한 후세의 평가를 정립해 나가는 데 큰 이정표가 될 것”(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이란 반응이 나왔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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