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처럼 여겨졌던 영국 최초 소설은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소소의책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1719년 첫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로 다가갔다. 표지부터 저자 대니얼 디포의 이름 대신 ‘로빈슨 크루소’와 ‘자신이 직접 쓴’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게다가 그처럼 섬에 고립된 선원의 실제 이야기가 몇 년 전 출간돼 인기를 끈 터. 영국 문학 최초의 소설 작품은 이처럼 사실주의의 특징 역시 보여줬다. 이 책 『문학의 역사』는 이런 소설이 자본주의와 나란히 등장한 것이 우연은 아니란 점도 전한다. 고립된 채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일군 로빈슨 크루소는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기도 했다.
영국의 문학교수로 이미 수십 권의 저서로 명성을 쌓은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겨냥한 문학 이야기이자, 영국 중심의 문학사를 풀어낸다. 디포, 오스틴, 브론테, 디킨스, 울프 등 낯익은 작가는 물론 이름만 들어본 서사시 ‘베오울프’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도 그 특징을 뚜렷이 포착해 문학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전한다.
총 40개로 구성된 각 장은 개별 작가·작품만 아니라 문학이 무엇이고, 독자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영화의 각색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그리고 검열·문학상·저작권·베스트셀러 등을 주제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국과 미국의 비교도 재미있다. 18세기 초 최초의 저작권법이 생긴 영국과 달리 미국은 19세기 말에야 관련 국제협정에 가입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는 영국 등의 작품을 저자 허락없이 출판한 ‘해적판’ 책들이 많았다. 또 미국이 19세기 말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입한 반면 영국의 출판업계는 1970년대 중반까지도 이를 거부했다.
책에는 일부 미국 문학과 카프카 등의 부조리 문학,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현대의 판타지 문학이나 팬픽, 모옌이나 하루키 같은 아시아 작가들 얘기도 나온다. 시대는 바뀌고 필사본·인쇄본·전자책 등 형태도 달라질망정 문학의 힘과 대중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저자의 낙관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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