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처리수’와 ‘풍평피해’
사실 용어 선택부터 일본에서 흔히 쓰는 ‘처리수’를 써야 할지 한국 신문에서 쓰는 ‘오염수’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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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예민한데 일본선 무관심
외면하고픈 문제, 터부반응 아닌지
」
나는 최근 매달 한·일을 왕래하면서 이 ‘처리수’ 방류를 둘러싼 양국의 온도차를 느껴왔다. 한국에서는 연일 ‘처리수’ 방류 관련 뉴스를 보는데 일본에서는 뉴스에도 별로 안 나오고 대부분 사람이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만나는 일본인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지만 “무슨 이야기?”라며 아예 방류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화제”라고 하면 “왜?”라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일본사람이 한국사람보다 관심이 낮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일본에서 관련 보도가 적은 것도 있지만 ‘처리수’라는 말로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일본정부는 ‘처리수’는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여론조사에선 ‘처리수’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보다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처리수’ 외에도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다. ‘풍평피해(風評被害)’다. 헛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을 말하는데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자주 쓰이는 말이다. 후쿠시마산 농산물이나 수산물이 안 팔리는 것은 ‘풍평피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헛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풍평피해’라는 말은 문제의 핵심을 바꿔 버리는 말인 것 같다. 일본에서 ‘처리수’ 방류에 대한 보도가 적었던 것도 방류 반대의 목소리가 작은 것도 ‘풍평피해’를 의식해서가 아닐까 싶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다. 일본에서는 개봉 안 할 수도 있다고 듣고 더더욱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는 원폭 피해에 대한 오펜하이머 개인의 복잡한 심정은 그려져 있지만 그는 미국에서는 ‘원폭의 아버지’로 태평양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받아들여진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해를 잘 아는 일본사람 입장에선 그 사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폭 피해만 강조해 온 일본과 달리 미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 입장에서 불편한 사실을 계속 외면하면 인식 차이만 커질 뿐이다. ‘오펜하이머’를 보며 ‘처리수’에 대한 주변국과 일본의 온도차와 뭔가 뿌리는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사자가 더 둔감해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후쿠시마원전 사고 직후 비가 내린 날 한국 수도권의 많은 학교가 방사선 피폭 우려로 휴교했다는 뉴스를 봤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이외 지역에서 방사선 피폭 우려로 휴교했다는 뉴스는 못 봐서 오히려 한국에서 반응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반대로 남북한의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일본에서는 곧 전쟁이 시작할 것처럼 보도하고 일본에서 걱정하는 연락이 많이 오는데 막상 한국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당사국에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 이웃 나라에서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문제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일본사람한테는 ‘이미 엎질러진 물’로 직면하긴 힘들고 외면하고 싶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환경 문제이며 세계 사람들의 건강 문제라는 것은 잘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처리수’ 방류에 대한 주변국의 반응을 보고 ‘풍평피해’라고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정말 30년 동안 방류해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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