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바이서우타오
‘바이서우타오’는 영어단어가 대만을 거쳐 중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뜻이 바뀐 말이다. 1960~70년대 영어에 ‘white-glove’라는 형용사가 생겨났다. 경매장이나 호텔, 고급 레스토랑의 직원이 손에 깨끗한 흰 장갑을 끼고 서비스하는 데에서 착안했다. ‘서비스가 세심하고 주도면밀하며 일류 수준인’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이를 대만에서 하얀(白) 장갑(서우타오·手套)으로 직역하면서 명사로 바뀌었다. ‘세심하게 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개자나 중개기구’를 의미했다. 흰 장갑을 끼고 나무망치를 든 채 경매 물품을 중개하는 경매사를 바이서우타오로 불렀다. 일류 경매사에게 주는 상의 명칭도 ‘바이서우타오상’이다.
바이서우타오는 곧 해협을 건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바뀌었다. ‘뇌물 공여자와 수여자를 대신해 중개하는 사람, 남을 대신해 불법적으로 돈을 세탁하는 중개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이다. 2021년 중국의 베스트셀러 소설 『인민의 재산』에 생생한 용례가 보인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부인에게 “바이서우타오란 말을 아느냐”고 묻는다. 갸웃거리는 부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린만장(소설 속 인명)의 ‘바이서우타오’야. 흰 장갑이 더러워지면 어떻게 하나? 버리지! 당신에게 닥친 위험이 바로 그거야.”
실제로 중국 고위층의 바이서우타오 역할을 했던 여성의 남편이 쓴 회고록도 나왔다. 미국에서 출판된 『레드 룰렛』의 저자 데스먼드 슘(중국명 선둥·沈棟)의 아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아내 장페이리(張培莉)를 위해 일했다. 지난 7월 작가의 미국 의회 증언을 앞두고 2017년 실종됐던 전 부인 돤웨이훙이 5년 만에 SNS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의 바이서우타오는 워싱턴의 로비스트 못지않게 힘이 있다지만 무척 위험한 직종임에 틀림없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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