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세조의 행차와 남은 이야기들
어가 행차 통해 왕권·불심 과시
지난 8월은 이례적인 무더위와 더불어 태풍으로 인한 자연재해로 힘들게 보낸 한 달이었다. 특히 지난 8월10일에는 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던 정이품송 소나무의 가지 2개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3년 2월에는 강풍과 함께 많은 눈이 쌓이면서 가지 1개가 부러졌는데, 30년 만에 다시 큰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정이품송은 수령이 600년 이상 되는 소나무로, 그 이름이 정해진 데는 세조의 행차와 관련이 깊다.
1462년(세종 8) 11월5일 ‘세조실록’의 기록에는 “왕이 상원사에 거둥할 때에 관음보살이 나타나는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백관들이 전(箋)을 올려 진하(陳賀)하고, 교서를 내려 모반, 대역, 자손이 조부모와 부모를 살해하거나, 처첩이 남편을 살해한 것,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것 등의 죄 이외에는 모두 용서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문수보살 대신 관음보살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세조가 상원사에 행차했을 때 문수보살을 직접 만났다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충북 영동의 반야사(般若寺)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에 들러 9일 동안의 법회를 끝낸 뒤, 승려 신미(信眉) 등의 요청으로 대웅전에 참배하였다. 이때 문수동자가 세조에게 따라오라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세조는 기분 좋게 절에 돌아와서 직접 쓴 어필을 하사하였고, 이 어필은 지금까지 보관되어 있다. 이후에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般若: 지혜)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세조가 상원사나 법주사와 같은 절을 자주 찾은 것에는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행차를 통하여 왕권을 과시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속리산의 정이품송과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세조 행차의 생생한 현장 모습을 증언해 주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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