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100년 ‘모르쇠’로 일관한 일본 정부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이한 1일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본은 ‘방재의 날’로 정해진 이날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중앙 정부 차원의 모의 훈련을 진행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 수장들은 긴급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회의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실제와 같은 모의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날 일본 정부 각료들은 100년 전 간토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방재 훈련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한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과거의 교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자체와 긴밀히 협력하는 훈련 등을 통해 대규모 재해 발생에 대비하고 있다”며 “간토대지진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재해대책에 만전을 기할 생각”이라고만 밝혔다.
그는 앞서 지난달 30일에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피해갔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줄곧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면서 발뺌해왔고 진상 규명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달리 그간 간토대학살 관련 기록은 끊임없이 발견돼왔다. 앞서 2012년 도쿄 주재 한국 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381명의 간토 대지진 학살 피해자 명단이 발견되는 등 당시 기록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날 도쿄 지요다구 국제포럼에서 개최한 ‘제100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는 과거와는 달리 한일 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했지만, 일본 정부를 공식 대표한 인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올해 추념식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가 주일 한국대사관과 재외동포청 후원을 받아 예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됐다.
대표적인 친한파인 하토야마 전 총리는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직하게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등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쿄 시내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50년간 해마다 열려온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해도 끝내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재일교포 등으로 구성된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1973년 이 공원에 추도비를 세우고 매년 추도식을 열어왔다. 이 추도식에는 과거 ‘원조 극우’라는 별명을 가진 이시하라 신타로를 포함한 역대 도쿄도 지사들이 추도문을 보내왔다.
고이케 지사는 2017년부터 간토대학살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전례를 거부했고, 100주년인 올해도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올해 2월 도의회에서는 일본 정부와 민간의 조선인 학살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자국 언론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도쿄신문은 31일 “부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라고 비판했다. 마이니치 신문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의 역사”라며 유언비어의 위험은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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