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위기 부른 ‘미·중 갈등’ 본질을 꿰뚫다

김용출 2023. 9. 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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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편의성 좇아 수년간 대립
‘거짓 서사’ 확대재생산… 관계 악화
서로간의 신뢰 회복 최우선 강조
양국 갈등 해소방안 3가지 제시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향도 조언

우발적 충돌/스티븐 로치/이경식 옮김/한국경제신문/3만5000원

미국과 중국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무역 전쟁과 기술 전쟁, 더 나아가 신냉전 위기라는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양국 관계는 협력 관계나 동반자 관계였다. 특히 경제와 무역이 두 나라 관계를 중심에서 지탱해 왔다.

1980년대 미국은 경기 침체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고, 중국 역시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개혁 개방과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새로운 성장 루트와 전략을 찾고 있었다. 두 나라 간 이해가 잘 맞아떨어졌다.
예일대 교수 스티브 로치는 신작에서 심화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은 거짓 서사에 의해서 확대 증폭된 측면이 크다며 우선적으로 서로 간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사진은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 기업은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리는 한편 저렴한 중국 제품이 들어오면서 미국 내 물가는 안정돼 더 나은 소비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중국도 급증하는 대미 수출에 힘입어 1978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눈부시게 도약했다.

하지만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거시경제 불균형이 가시화했고, 대외적으론 무역 상대국과 긴장을 초래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수출주도 성장에도 한계가 닥치면서 소비 중심의 경제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예상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미국 역시 저축 및 국제수지에서 불균형이 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치적 편의성’ 때문에 서로에 대한 ‘거짓 서사’를 확대재생산되면서 양국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했다. 거짓 서사들이 미·중 갈등을 고조시키는 강력한 연료로 쓰인 것이다.

우선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표적인 거짓 서사는 중국 때문에 무역 적자가 증가했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현재의 경제 침체는 중국과의 무역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하고 약탈적이며 불법적이기까지 한 경제공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정치인과 관료들이 정치적 편의성을 좇아 앞장서고, 언론의 자유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배경으로 양극화된 의견들이 확산 증폭됐다.

반대로 중국에선 미국에 대한 거짓 서사가 횡행했다. 중국의 성장과 발전을 미국이 방해하고 억제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아울러 무역 전쟁이 미래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서사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검열 제도에 의해서 진짜 서사와 거짓 서사 간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정보는 더욱 왜곡됐다.

경제와 무역보다 안보를 더 중시하는 등 과거와 달리 이념화된 양국 상황도 갈등을 되돌릴 수 없는 차원으로 밀어 넣었다. 중국 지도자 시진핑은 ‘중국몽’을 천명하면서 미·중 갈등을 이념대결 차원에서 바라보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 위협을 끝없이 강조하면서 갈등을 부채질했다. 새로 집권한 바이든 역시 거짓 서사를 털어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신작에서 심화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며 두 나라 간 거짓 서사에 의해서 확대 증폭된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30여년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고, 미·중 경제전략을 다룬 ‘G2 불균형’과 아시아 미래를 예측한 ‘넥스트 아시아’를 펴낸 아시아통.
스티븐 로치/이경식 옮김/한국경제신문/3만5000원
저자는 점점 악화하는 미·중 갈등을 푸는 방법으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문제 해결의 시작으로 서로에 대한 거짓말로 깊게 뿌리박힌 환영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서로 피해자 행세를 멈추고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양국 사이의 투자 장벽을 친성장 지향의 양자 투자조약으로 해결하고, 셋째 미중사무국이라는 새로운 상설 조직을 설립해 우발적 충돌을 관리하라고 제안했다.

저자는 작금의 미·중 갈등 상황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도 조언한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로선 중국과의 연결성을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안보 우산을 버릴 수도 없다며 미·중 어느 한쪽에 대한 지지보다는 두 나라 간 갈등 최소화에 노력하는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경제적인 차원의 고려와 안보적인 차원의 고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일은 어떤 나라라도 쉬운 일이 아니며, 한국은 특히 더 그렇다. 내가 한국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갈등하는 두 나라의 어느 한쪽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나서기보다는 갈등의 고조를 늦추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상호 노력을 지지하는 접근법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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