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뉴라이트 이념 전쟁’…육사·국방부·보훈부 전면에
국방TV 유튜브 채널 올렸던
‘홍범도 풀 스토리’ 영상 삭제
7월부터 백선엽 웹툰 재게시
보훈부, 이승만 재평가 앞장
국교위 위원장·EBS 이사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 배치
건국절·헌법 논쟁 키울 듯
육군사관학교가 소련공산당 활동 이력을 문제 삼아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역사관이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건국의 아버지로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고,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을 재평가하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일맥상통한다. 윤 대통령이 쏘아올린 뉴라이트 역사 전쟁에서 육사와 국방부·국가보훈부가 선봉에 섰다.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의 유튜브 채널 <국방TV>는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라는 제목의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이 1일 확인됐다. 2018년 8월 올라온 이 영상은 홍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과 1937년 카자흐스탄 강제이주 이후 삶을 다뤘다. 특히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입당에 대해 “당증이라도 있으면 고려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입당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면서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앞서 국방부가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이 육사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흉상 철거·이전 배경을 밝힌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육사가 흉상을 교내에서 철거하기로 한 다음날 해당 영상도 사라졌다.
반면 2018년 홈페이지에서 내렸던 백선엽 웹툰은 지난 7월 말 다시 게재했다. 이 웹툰은 친일 행적은 언급하지 않고 전쟁영웅으로만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보훈부도 이념 전쟁에 적극 참전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중국공산당 가입 전력 등을 지적하며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저지에 직을 걸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또 박 장관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승만 재평가는 ‘건국절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련의 흐름 배후에는 윤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홍 장군 흉상 논란과 관련해 “어떤 일이 옳은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뉴라이트 역사관과 맞닿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고 정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13일이 건국의 뿌리라는 다수의 입장에 반해 뉴라이트 측은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이 건국일이라고 주장한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 통치의 강제성과 폭력성을 부정하고 ‘성장’ ‘발달’ 같은 긍정적 변화로 미화한다. 임시정부나 광복군·독립군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반공 대통령’ 이승만을 부각시킨다. 독립영웅이라도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다고 판단되면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다.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 계열을 부인하고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사를 배제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은 정부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 이배용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역사교과서의 ‘민주주의’ 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이승만 독재’를 지우는 작업을 주도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신지호 부위원장도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로 임명된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과거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활동을 두고 ‘반민족 행위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역사 전쟁은 홍 장군 흉상 이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건국절, 교과서, 또 헌법 논쟁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전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현 흐름이 뉴라이트 자체라면서 헌법 논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이동휘는 볼셰비키 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한, 신념에 가까운 공산당원”이라면서 “이 문제가 대두되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된 헌법 수호 책무 위반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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