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유령 아니다" 방송사 비정규직 방송의날 행사 기습시위
39개 지상파 방송사 가입한 방송협회 방송의날 찾아 시위
방송 비정규직 당사자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 출범 알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우리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을 대표해 오늘 방송의날 행사에 왔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우리는 욕받이가 아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
1일 지상파 방송사 협회인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한 '방송의날' 행사장에서 방송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등 9명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2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방송협회 행사장에서 피에로 가면을 쓰고 피켓을 든 채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방송사를 규탄한다. 방송을 만드는 진짜 주인공은 비정규직”이라고 외쳤다.
행사장을 지키던 경호원 5명은 이들에게 출입을 위해 사전 등록 확인을 요구하다, 이들이 일렬로 서서 시위를 시작하자 “나가세요”라며 제지했다. “준비할 시간을 줄 테니 5분이면 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계속 외치자 이들을 마주보고 일렬로 섰다. 소리를 듣고 일부 행사 참가자들이 나와 지켜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경호원들이 시위 중인 활동가들 사진을 채증했다가 활동가들이 '경찰도 정해진 기준과 지침에 따라서만 채증할 수 있다'고 항의해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기습시위를 마친 뒤 같은 장소에서 방송노동자 당사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이 방송사들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엔딩크레딧엔 방송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와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 샛별노무사사무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직장갑질119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회견 무렵엔 경호원들이 15명가량으로 늘어났다.
고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씨는 여는 발언에서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면, 특히 차별 받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얘길 하면 선입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을 탓한다”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그나마 비판하고 이야기한 곳이 있다. 방송사들”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방송사들이 과연 (비정규직 문제가 있는 기업을 비판할) 자격이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들이 비판하는 그 어떤 기업, 기관보다도 속은 썩어있고 곯아있는 곳이 바로 방송사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사 노동자 절반 넘는 비율이 비정규직이고 이를 방관하다 못해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자 개인 인생과 목숨까지 빼앗는 곳이 방송사”라며 “방송사는 말 그대로 비정규직 백화점, 비정규직의 무덤”이라고 했다.
이씨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노동 문제와 사건 사고들이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만행으로 벌어졌는데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숨기기 급급하다. 방송사는 더 이상 스스로 정화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제 우리 당사자들이 직접 나선다. 늘 접하는 미디어 속 화려한 영상과 연예인, 그 뒤엔 피와 땀을 녹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진짜 주인공들이 따로 있다. 바로 이들이 방송의날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방송사의 6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방송의날 행사에서조차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방송의날에 참석하는 여러 관계자들이 정확하게 한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며 “엔딩크레딧은 작지만 아주 강력한 뜻을 모아 향후 여러 활동을 통해 비정규직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엔딩크레딧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수의 정규직이 아니다. 비록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땀과 희생 없이 방송 산업은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 권리는 수십 년간 철저히 박탈 당했다”고 했다.
이들은 “(방송계갑질119, 방송스태프지부와 고 이재학 PD 사망 이후 결성된 대책위원회 등) 노동자들의 선명한 저항 이후 사용자 방송사들의 비정상적 맞대응도 뚜렷해졌다”며 “방송 제작 현장의 불법과 부당한 처우, 차별의 '엔딩'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을 통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주요 활동으로 △개별 법률 투쟁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더 폭넓은 대응 △전국에 흩어진 방송비정규직 연결고리 구축 △정규직-비정규직 간, 직종 간 벽을 넘어선 연대 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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