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늦게 받는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빠진 ‘반쪽 개혁’

김향미 기자 2023. 9.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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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계산위, 기금유지 방안 공개
보험료율 연 0.6%P씩 인상안에
지급 연령·기금수익률 변수 조합
선택지만 18개 ‘동력 상실’ 우려
지난 3월31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민원인이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 토대가 될 전문가 위원회의 재정안정화 방안이 1일 공개됐다.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1998년 이후 동결된 현행 보험료율(9%) 인상이다. 12%에서 15%까지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연금을 받는 연령을 최장 68세로 늦추는 안, 기금투자수익률을 높이는 안을 조합해 총 18가지 시나리오가 나왔다. 다만 연금개혁 논의의 한 축인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담기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재정계산 보고서’를 공개했다. 민간 전문가 위원 13명·정부 위원 2명 등으로 꾸려진 재정계산위는 지난해 11월 말 출범해 9개월간 개혁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3월 말 나온 제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 제도(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때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055년 소진된다. 쌓아둔 기금 없이 당해 연도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걷어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이때 보험료율은 29.8%(2060년)까지 올라간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은 “2023년 현재 최초 가입연령인 18세 사람이 평균수명(앞으로 약 70년)까지 살 동안에는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재정계산의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재정안정화 방안을 보면 보험료율 12%(2025년부터 매해 0.6%포인트씩 2030년까지 인상), 15%(2035년), 18%(2040년)로 각각 올렸을 때 기금 소진 시점은 2063년, 2071년, 2082년으로 각각 늦춰진다. 이는 “보험료율 인상만으로는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에 재정계산위는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2033년 이후 5년마다 1세씩 상향해 2048년엔 68세에 연금을 받도록 하는 조치를 검토했다. 현재 연금 수급개시연령은 63세이고, 2033년 65세로 조정된다. 또 기금수익률을 재정추계 당시 기본가정(향후 70년간 평균 4.5%)보다 0.5%포인트, 1%포인트 각각 높이는 안도 검토했다.

보험료율을 12%·15%·18%로 각각 인상하는 것을 전제한 후, 연금 수급개시연령 68세 상향 또는 기금수익률 제고안 등을 조합해 각각 6개씩 총 18개 시나리오가 나왔다.

‘보험료율 12%’ 시나리오 6가지는 기금 소진 시점이 2063~2080년으로 연장됐다. ‘보험료율 15%’ 시나리오 6가지는 기금 소진 시점이 2071~2093년까지 늘어났다. 보험료율 15%에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68세로 상향하고, 기금수익률을 1%포인트 높일 땐 2093년에도 기금이 남아 있었다. ‘보험료율 18%’로 올릴 때는 추가 조치 하나만 있으면 2093년까지 기금이 유지됐다.

18개 시나리오 속 ‘12%·15%·18% 인상안’…재정계산위 “상향 땐 추가부담금 지원 검토”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한 재정안정화 방안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나 사용자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직장가입자는 사측이 보험료 절반(4.5%)을 부담한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지역가입자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한꺼번에 보험료율이 크게 뛰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재정계산위는 “보험료 지원사업을 저소득 지역가입자 전체로 확대하고, 보험료율 상향 시 추가 부담분에 대한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68세로 상향하는 안도 ‘더 늦게 받는’ 개혁 방향이기 때문에 가입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정년 연장 등 고용정책과도 연계돼야 한다. 시나리오상 기금수익률 목표(5~5.5%)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이번 개혁안이 우선순위 없이 18개 시나리오만 나열식으로 제시돼 연금개혁 동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용하 위원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시나리오 모두가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0.6%포인씩 매해 올린다는 점에서 하나의 방향성이 있다”며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해를 돕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금개혁 논의에선 소득대체율 유지와 인상을 두고 입장이 갈린다.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로, 수급자가 받는 급여액 수준을 말한다. 이번 보고서 작성 때 ‘다수안(유지)·소수안(인상) 표기’ 여부를 두고 재정계산위 위원 간 갈등이 빚어졌다. 결국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목표를 상실한 반쪽짜리 개혁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정계산위는 이번 공청회 등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최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오는 10월까지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현재 국민연금과 다른 공적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직역연금)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구조개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도 오는 10월까지 활동한다. 이후 연금개혁을 마무리하려면 정부와 국회가 개혁안을 도출한 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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