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담아 낸 온·오프 속 다른 삶[책과 삶]
낮은 해상도로부터
서이제 지음
문학동네 | 376쪽 | 1만7000원
소설가 서이제는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 대부분을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꽤 많은 말을 이모티콘과 이미지로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게임 속 세상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자아를 현실의 그것과 다르게 꾸미기도 한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2023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니까.
서이제의 두 번째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의 특징은 이 같은 세상의 모습을 작품에 구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 전통적인 단편과는 다른 형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보상자스타’에는 ‘2020CD3’ ‘1999RQ36’ 같은 뜻 모를 기호들이 문단 사이에 적혀 있다.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에는 더 콰이엇, 넉살, 매드클라운 같은 동시대 래퍼들의 가사가 초콜릿 속 아몬드처럼 박혀 있다. ‘영원에 다가가기’에는 인스타그램 화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낯선 실험이지만 어색하지 않으며, 심지어 소설들이 구현하는 세상의 모습을 근사하게 반영한다.
무엇보다 서사와 등장인물에 설득력이 충분해 가독성이 뛰어나다. ‘#바보상자스타’의 화자는 주식투자를 했다가 꽤 큰 돈을 잃은 뒤 근근이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에겐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진 사촌 형이 있다. 사촌은 어느 날 인기 아이돌이 돼 나타난다. 좋아하는 여성이 이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얘기에 자신도 그를 ‘덕질’ 하는 척하지만, 화자는 여성에게 그가 자신의 사촌 형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한때 종종 얼굴 보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머나먼 별처럼 멀어진, 그러나 여전히 연락하기 불가능하진 않은 사촌 형에 대한 모호한 감정이 명확하게 묘사돼 있다. 가족 같은 오프라인 관계가 아닌, 미디어·온라인 게임 등으로 매개된 온라인 관계의 새로움, 당황스러움을 높은 해상도로 포착한 단편들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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