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혐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기각···“도주 우려 적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박 대령의 입을 막기 위한 군검찰의 무리한 구속 추진에 대한 비판이 커질 전망이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1일 오후 6시45분쯤 항명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군검찰이 박 대령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증거인멸 우려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이날 저녁 군사법원 밖으로 나온 박 대령은 “감사하다”며 “많은 성원에 힘입어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꼭 저의 억울함을 규명하고, 특히 고 채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박 대령이 “언론을 통해 허위 주장을 반복하며 관련자들의 진술을 오염시키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면서 “이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 것으로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진행경과, 피의자가 향후 군수사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국방부 검찰단은 영장 기각 후 입장문을 통해 “피의자가 군사법원에 약속한대로 성실히 소환조사에 임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서 “만약 다시 출석거부 등 수사를 지연시킬 때는 필요한 법적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군 검찰단이 지난달 4일 ‘범죄사실’을 명확히 적시하지 않고 박 대령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해 수집한 증거는 효력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이를 바탕으로 한 구속영장 자체가 무효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앞서 박 대령은 지난 7월19일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관련 수사 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뒤 지난달 2일 이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면서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하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했다. 집단항명 수괴죄는 주로 내란이나 쿠데타 등에 적용된다. 군 검찰은 이후 ‘항명’으로 혐의를 변경했다.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박 대령이 외압의 배경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령은 지난달 28일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수사 결과와 관련해 외압이 있었고,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군 검찰은 ‘대통령 외압설’이 공개된 다음 날인 30일 박 대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과정에서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박 대령의 입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던 군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더불어 채 상병 수사와 관련한 외압 의혹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외압의 실체, 항명의 범위 등을 놓고 치열한 법적 다툼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군사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국방부 검찰단의 구속영장 청구와 강제 구인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확인됐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위를 밝히라는 국민 명령에 항명하지 말고 이제라도 수사에 대한 외압과 박 전 단장에 대한 탄압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박 대령을 지지하는 해병대 예비역 동기들이 서울 용산 중앙지역군사법원 입구로 모였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나온 이들은 “정의를 수호하는 우리 해병 혼을 다시 한 번 일깨우겠다”면서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다.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 (중략) 내 조국 이땅을 함께 지키며 불바다 헤쳐간다’는 가사의 군가가 법원 앞에 퍼졌다.
해병대 사관 77기로 박 대령(81기) 선배인 박찬아 씨는 “현역 생활을 해본 선후배들이라 상황 인지를 잘 하고 있고 박 대령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면서 “박 대령과 근무했던 내 동기들도 박 대령이 소대장 시절부터 해병대 정신이 충일한 장교로 자기 업무에도 충실했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박 대령과 변호인단은 군사법원 출입문 문제로 2시간 동안 대치하기도 했다. 박 대령 측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도착했지만 출입문이 닫혀있었다. 박 대령 측은 법원이 국방부 위병소를 통해 출입조치한 후 국방부 검찰단을 통해 출석하라고 요구했다면서 이는 부당한 조치라고 맞섰다. 대치가 1시간 넘게 이어지자 소병철·박범계·박주민·박용진 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8명이 군사법원이 있는 국방부 후문으로 와서 국방부 검찰단에 항의했다. 이후 군검찰은 구인영장을 집행해 후문 민원실에 있던 박 전 단장을 강제구인했다.
본래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던 영장실질심사는 출입문 대치 와중에 오전 10시30분으로 한 차례 연기됐고, 오후 1시30분으로 재판 시간이 다시 변경됐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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