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 그깟 공놀이
“오늘 우리가 이겨야 단독 7위인데.” “우리 태인이가 잘 던지겠지?” 응원봉에 머리띠, 유니폼까지 무장한 야구팬들이 지하철에서 왁자지껄 떠든다. 참고로 원태인은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이름이다. 익숙한 광경이다. 그러나, 인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보기엔 사뭇 낯설다. 스포츠 팬의 절대다수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선수들의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니다. 팀이 우승한들 팬에게 떡고물이 떨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 팀이고 ‘우리’ 태인일까? 물론 선수가 못하면 팬들은 바로 쌍욕을 날린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두 집단이 맞붙는 팀 스포츠는 전 세계 어디서나 비상한 관심을 끈다.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직접 즐기고(조기축구), 경기장에서 구경하고(치맥 직관), 선수의 기량을 분석하고(판타지 풋볼, 세이버매트릭스), 팀에 일평생 충성한다(한화 보살팬). 그깟 공놀이가 뭐길래 사람을 이토록 벅차고 설레고 비참한 감정에 빠뜨리는 걸까? 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 감독의 말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 아닌가? 담담한 관찰자인 척하지만, 사실 나도 주말 밤마다 우리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시청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 시간에 연구를 더 했으면…그만두자.
싸움 놀이가 전투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여러 학자가 지적했다. 특히 뒤쫓기, 뒹굴기, 씨름하기 같은 일대일 싸움 놀이는 인간 유아뿐만 아니라 많은 포유류의 새끼에서 흔히 나타난다. 유아들의 일대일 싸움 놀이는 나중에 커서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기량을 습득하게 해주는 진화적 적응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때리거나 차는 등 실제 싸움의 기술은 부상의 위험을 없앤 안전한 형태로 변형되어 행해진다. 성인이 되면 레슬링, 펜싱, 양궁, 권투, 태권도처럼 일대일로 맞붙는 개인 스포츠를 통해 전투 능력을 기르고 누가 뛰어난 전사인지 평가한다. 역시 부상을 피하고자 물어뜯기, 박치기 등의 행위는 금지된다.
하지만, 왜 팀 스포츠인가? 인간은 집단과 집단이 맞붙어 경쟁적인 놀이 활동을 펼치는 유일한 종이다. 다 큰 어른들이 공 하나를 상대 팀의 그물에 집어넣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놀이가 피가 흐르고 비명이 넘치는 진짜 전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상관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진화인류학자 미셸 스컬리스 스기야마는 팀과 팀이 부딪치는 동맹 싸움 놀이는 먼 과거의 진화적 환경에서 행해진 집단 간 전투에서 필요했던 기량을 익히고 평가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연 선택된 적응이라고 제안했다. 수렵·채집 환경에서의 전투는 주로 한 무리의 전사들이 협력해 상대 집단을 기습한 다음에 본진으로 재빨리 복귀하는 형태였다. 승전고를 울리려면 단순히 일대일 싸움에서 혼자 이기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다. 팀의 일원으로 헌신하고, 구성원들과 똘똘 뭉치고, 전략에 따라 내가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즉, 조직적인 집단 공격을 잘해내게끔 인류의 조상은 동맹 싸움 놀이에 대해 어려서부터 강한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가설로부터 두 가지 예측이 얻어졌다. 첫째, 팀 스포츠가 누리는 세계적 인기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전투를 위해 진화한 인간 본성에서 유래한다면, 동맹 싸움 놀이는 원시적인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폭넓게 나타날 것이다. 예측대로 100개의 수렵·채집 문화권 가운데 46개에서 동맹 싸움 놀이가 보고되었다. 막대로 공을 치는 게임이 가장 흔했다. 공을 발로 차는 게임이 그다음이었다.
둘째, 팀 스포츠에서 흔히 쓰이는 운동 패턴들은 창이나 칼, 몽둥이 같은 근거리 무기를 쓰거나 백병전을 구사했던 먼 과거 전투에서 쓰였던 운동 패턴들과 유사할 것이다. 팀 스포츠의 상당수는 공과 같은 물체를 몸이나 막대기로 전진시킨다. 덕분에 경기자는 근거리 전투에서 주로 쓰이는 운동 패턴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목표를 향해 물체를 던지기·피하기·차기·때리기, 몸을 막기·밀기·붙잡기 등이다. 경기자의 부상을 피하고자 때리거나 차는 등의 강한 힘은 오직 공에만 허용된다. 막거나 붙잡는 등의 약한 힘만 몸에 허용된다. 이 예측 역시 46개 수렵·채집 문화권에서 확인되었다.
요컨대, 팀 스포츠를 향한 우리의 뜨거운 열정은 조직적인 기습에 필요한 기량을 습득하게끔 진화한 본성에서 유래하는 듯하다. 어떤 행동이 적응이라 해서 그 행동이 더 고귀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 애호심은 자본주의에 포섭된 비뚤어진 욕망일 뿐이라는 시각에는 근거가 희박함을 알아두면 좋겠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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