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구석구석…손상된 세포에 생기 불어넣는 ‘순산소’
손상된 피부 세포 재활·성장 촉진
화상·피부이식술 등 환자에 효과
치료기간 단축·후유증 확률 감소
환자 상태 위중하면 적용 어렵고
백내장 있는 경우 역효과 위험 커
적정 치료지침 만드는 것이 목표
잠수정과 비슷하게 문과 창문이 달린 압력 챔버 안에는 고압산소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앉을 의자가 줄지어 놓였다. 이 치료실에선 기압을 평소(1기압)의 4배인 4기압까지 올릴 수 있다. 기압이 높아야 마스크로 흡입하는 순도 100%의 산소가 말초혈관까지 도달하기 쉽고 치료 효과가 올라간다.
의료진은 짧은 시간 안에 기압이 올라가 귓속이 먹먹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귀 안팎의 압력을 맞추는 것을 돕는 ‘이퀄라이징’ 호흡법을 안내했다.
마스크를 쓰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산소가 나왔다. 고농도의 산소를 들이마신다고 해서 평소와 감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2시간가량 진행하는 실제 환자 치료보다 짧은 30분만 경험했을 뿐인데도 손발 끝의 피부 감각이 다소 민감해진 것을 체감했다.
지난달 29일 찾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에서는 치료실마다 10명 이상의 환자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고압 챔버 2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화상치료 전문병원이라는 특성에 맞게 동시에 최대 25명의 환자가 들어갈 수 있다.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지난달 중순부터 화상을 포함한 피부 외상 및 질환으로 입원 중인 환자들이 주로 이 치료실을 사용한다. 허준 한강성심병원 원장은 “공공성이 높은 화상치료에서 더 높은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적자가 나는 병원 사정에도 새롭게 치료센터를 개설했다”며 “향후 피부 외상·질환 치료를 위해 내원하는 외래 환자를 비롯해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질환의 환자에게도 문을 넓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강성심병원은 국내 화상전문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고압산소치료센터를 개설했다. 인체의 가장 바깥 부분인 피부 조직의 세포 단위까지 산소를 효율적으로 흡수시켜 화상 등 피부 외상·질환의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평소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상처를 입어 손상된 모세혈관에는 지나갈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압을 높여 혈액 속에 녹아드는 산소 분자의 양을 늘린다. 허준 원장은 “손상된 세포에 도달한 산소는 세포의 재활과 성장을 촉진하고 새로운 혈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화상 외에도 욕창, 당뇨병성 족부궤양, 감전이나 교통사고로 피부이식술을 받은 환자 등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압산소치료는 상처가 난 부위의 손상된 혈관이 재생되거나 새로 생기는 반응을 촉진하는 효과 때문에 치료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치료기간이 단축됨에 따라 통증과 후유증이 생길 확률도 줄어들고, 상처가 빨리 나으므로 가려움증 등을 유발하는 흉터로 진행될 가능성도 낮춘다. 특히 화상 부위가 넓어 피부이식술을 한 경우 해당 조직의 활성도가 높아져 생착이 빨리 이뤄질 수 있어 부작용과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
다만 피부 외상 환자라도 상태가 중하면 적용이 어렵다. 치료실 챔버 안에 인공호흡기 같은 중환자용 의료기기와 병상을 설치하기 어렵다. 또 고농도의 산소를 흡입하면 안 되는 질환은 의료진이 사전에 막는다. 대표적으로 백내장 환자는 이 치료가 백내장 진행을 가속할 수 있어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산소가 독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약 20% 정도인 대기 중의 산소 농도보다 고농도의 산소를 지속해서 마시면 현기증, 오심 및 구토, 실신 등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압산소치료는 일정 시간 동안 고농도 산소를 마셨다가 다시 일반 공기를 마시며 휴식하는 주기를 반복하도록 치료 일정을 통제한다.
고압을 버티기 위한 챔버 두 대에 관련 장비 무게만 40t이 넘어 한강성심병원은 1층에 자리 잡은 치료센터 개소 전 건물 보강 공사까지 거쳐야 했다. 화상 전문병원이란 명성을 갖고 있었으나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면서 화상 환자도 점차 줄고 있어 적자 운영을 하고 있던 사정도 발목을 잡았다. 병원 측은 신규 장비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환자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한편 병원으로서 장기적으로 경영 사정도 개선할 수 있는 장비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밝혀진 고압산소요법의 효능을 바탕으로 적정 치료지침을 만드는 것이 병원과 연구진의 목표다. 공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피부 외상 및 질환 분야의 중환자에게까지 치료영역을 확장하려면 연구와 관련 실적이 더욱 필요함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허준 원장은 “최근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 지침을 밝혔지만 화상치료는 필수의료 분야에서도 빠져 있었고, 이 센터 역시 정부 지원이 전혀 없이 열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빈곤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화상 환자 치료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지만 해외 환자 유치, 화상 특화 연구 등을 바탕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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