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다, 의리의 창원! 의리의 원주!

김종수 2023. 9. 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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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의 ‘부산행’에 대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최근 KCC는 속전속결로 전북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지 이전을 마쳤다. 오래전부터 준비가 되어있었던 듯 대응할 틈도 없이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지었다. 기존 약속을 지키지않은 전주시의 실책이 컸던지라 명분도 확실했고 그로인한 언론플레이까지 깔끔했다.


졸지에 속앓이를 하고있는 것은 전주 팬을 비롯한 호남 스포츠팬들이다. 20년 넘게 가족처럼 지지하고 응원하던 대상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린지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북 현대, KIA 타이거즈와 함께 호남 스포츠를 대표하던 농구 명문은 이제 없다. 이조추 트리오의 전설도, 하승진과 들개군단(전태풍, 임재현, 강병현, 신명호)의 신화도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시민들의 분노는 무능한 전주시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의리를 지키지않은 KCC도 아쉽지만 프로 스포츠는 비즈니스다. 전주시는 명분이 필요했던 KCC에게 약점을 노출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머리 싸움에서도 완패했다. 농구를 떠나 향후의 전주시 미래가 걱정된다는 얘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개인대 개인이 아닌 공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무능도 죄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회 송영진 위원장과 위원회 소속 의원 8명, 전주시의회 직원 6명 등 총 14명은 지난 28일 3박 4일 일정으로 관광성 제주도 연수를 다녀온 것으로 드러나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있다. 전주 시민과 호남 농구팬들이 KCC 연고지 이전으로 마음 고생을 하고있는 동안 손과 발이 되어줘야할 시의원들은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휴양을 즐겼다.


KCC팬 김재환(48‧학원운영)씨는 “요새 지인들을 만나면 온통 KCC 연고지 이전에 대한 얘기뿐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매 시즌마다 KCC를 함께 응원하며 웃고 떠들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가 사라졌다. 국내 최고 명문 농구팀이 지역에 있다는 자부심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내 가만히 있던 KCC가 왜 이렇게 갑자기 서둘렀는가에 대한 의문점도 팬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연초에 있었던 단장과 감독 퇴진을 촉구하는 트럭시위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냐는 추측도 흘러나온다. 팀내 영향력이 큰 둘에게 팬들이 대항했고 구단에서는 연고지 이전을 통해 제대로 한번 힘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억측에 가깝다. 당시 트럭시위 리더들은 전주가 아닌 타지역 KCC팬들이었으며 해당 사건이 아니더라도 연고지 이전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불거지고 있었다. ‘설마, 설마…’하다가 제대로 일이 터졌다고 보는게 맞다. 어쨌거나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 되었고 ‘KBL은 경상도 리그다’는 말이 나올만큼 영남에만 최다인 4개팀이 집중되었을 정도로 기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새로이 KCC와 가족이 된 부산 팬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직장인인 B씨(35)는 “기아, KT에 이어 KCC가 3번째로 부산 연고팀으로 들어왔다. 워낙 자주 바뀌는 상황인지라 내 지역팀이라는게 아직 실감이 나지않는다. KT가 들어올 때도 전남 팬들에게 미안했는데 이번 역시 전북 팬들에게 KCC를 빼앗아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치않다. KBL은 유독 연고지 이전이 많은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마음놓고 연고팀을 응원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누구보다도 마음 든든하고 연고팀이 자랑스러운 이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창원 LG와 원주 DB 팬들이다. 지방권팀으로는 유이하게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연고지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농구의 도시로 불리던 인천을 비롯 여수, 전주 모두 연고팀이 떠났지만 창원과 원주는 마치 해당 지역에 뿌리를 박은 듯 든든하게 팬들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함께하는 창원 LG! 끝까지 세이커스!' 현재의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LG의 지역 사랑은 유명하다. 창원 팬들의 열기도 뜨겁고 LG 또한 굳건한 믿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여러팀이 연고지를 옮기고 있음에도 창원 팬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프로 2번째 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한 LG는 투자에 비해 성적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끊임없이 전력보강을 하면서 정상에 도전했지만 정규 시즌 1위 한번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아직까지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팬들은 우승 많이 한팀들이 부럽지 않다. 여러차례 우승을 거두고 연고지를 떠나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LG는 10개 팀 중 리그 출범 후 팀명, 연고지, 홈구장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유일한 팀이다. 어찌보면 우승보다 훨씬 큰 자랑거리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족처럼 끈끈하게 묶여져 있다는 것은 우승보다 더 큰 자산이다.


창단 때부터 LG를 응원했다는 H씨(44‧자영업)는 “솔직히 우리 팀이 왜 이제까지 우승을 못했나 답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승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번 KCC 연고 이전 사태를 보면서 느꼈다. 농구에 관심이 많은 창원시도, 끝까지 팬들과 함께하는 영원한 창원팀 LG도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DB 또한 원년부터 원주 팬들과 함께하며 원주를 넘어 강원도 전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팀명이 자주 바뀐 것을 비롯 모기업 교체도 한차례 겪었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않다. 가장 핵심인 연고지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원주 팬들을 자랑스럽게 하고있다. 원년 실업농구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은행 선수들을 모아서 나래이동통신 농구단을 창단할 때까지만 해도 큰 관심은 받지 못했다.


원체 전력이 약해서 유력한 꼴찌 후보인데다 강원도 원주는 스포츠 쪽에서는 불모지에 속했기때문이다. 하지만 원주의 저력은 강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원년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것을 비롯 꾸준한 전력보강을 통해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 정규시즌 우승 5회의 성적을 기록하며 KBL을 대표하는 명문으로 거듭났다.


창단 시즌부터 현재의 연고지에서만 홈경기를 치른 유일한 구단으로 연고지에 클럽하우스 정착을 KBL이 의무화하기 전 자발적으로 선수단 클럽하우스를 연고지 내에 지었을 정도로 원주 정착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원주 및 강원도민들이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팀이다. 잦은 연고지 이전으로 적지않은 팬들이 불안에 떨고있지만 의리의 LG, 의리의 DB팬들은 그저 든든하기만 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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