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18개에 '소득대체율' 빠진 보고서…국민연금 개혁까지 '험난'
연금특위 구조개혁 논의 '지지부진'…오는 4일 회의
(세종=뉴스1) 최현만 기자 =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자문 기구인 국민연금 제5차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소득대체율(연금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은 빼놓은 채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등 18개 개혁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를 1일 공개했다.
보고서가 하나의 단일한 개혁안을 제안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나열하는데 그치고 소득대체율 상향 등 보장성 강화 논의가 빠지면서 '반쪽' 보고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10월 국회에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단일안이 아닌데다 소득대체율 논의가 빠진 보고서여서 개혁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도 인기없는 연금개혁에 의지를 보일지 미지수라 실제 개혁으로 실현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내고 늦게 받는' 안 담겨…'70년 기금 소진' 막는 시나리오 유력
재정계산위는 이날 서울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 연금지급 개시연령, 기금투자 수익률이라는 3가지 변수를 조합해 18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보험료율은 현행 9%지만 매년 0.6%포인트(p)씩 올려 12%, 15%, 18%로 인상하는 안이 담겼다.
연금지급 개시 연령은 올해 63세이고 5년에 1세씩 늦춰져 2033년에는 65세에 도달하게 되는데, 2033년부터 추가로 5년마다 1세씩 상향해 68세까지 높이자는 안이 담겼다.
연평균 기금투자 수익률은 4.5% 수준으로 예상되나, 여기서 0.5%p나 1%p 높이는 경우를 상정했다.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을 12%, 15%, 18%로 각각 올릴 때(3가지), 연금지급 개시 연령을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68세로 올릴 때(2가지), 기금투자 수익률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0.5%p나 1%p 높일 때(3가지)를 조합해 18가지 시나리오를 보고서에 담았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2%로 높이고 지급개시연령을 68세로 늦추면서 기금투자수익률을 0.5%p 상향하면 기금소진시점은 현행 2055년에서 2073년으로 늦어진다는 식이다.
단일한 안을 담지 않고 여러 안을 보고서에 담은 것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공청회에서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수십개의 시나리오 가운데서 어떤 것을 두고 판단하고 논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정계산위가 보고서에서 재정 지속가능성 목표를 "재정계산기간(2023~2093년) 중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한다"고 제시했고, 이에 맞는 시나리오가 많지는 않은 만큼 방향성은 제시했다는 의견도 있다.
보험료율을 15%까지 인상하면서 지급개시연령을 68세로 높이고 기금투자수익률을 1%p 올리는 방안, 보험료율을 18%까지 인상하면서 지급 개시연령 혹은 기금수익률을 상향하는 방안들이 재정 지속가능성 목표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다.
특히 재정계산위는 내부적으로 시나리오 중 '보험료율 15%인상·지급개시연령 68세 상향·기금투자수익률 1%p 제고' 방안을 최선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상향' 논의 제외…"최종보고서에 담도록 노력"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상향' 논의가 빠진 만큼 공청회에서는 관련 비판이 이어졌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소득대체율 40%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보고서에 반영돼야 하는데 빠졌다"며 "균형 있게 이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고서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재정계산위는 수차례 회의를 통해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나 50%로 올리는 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재정계산위 내 소득대체율을 유지해 '재정 안정'을 도모하자는 위원들이 다수였던 만큼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상향을 '소수안'이라고 명시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소득대체율 상향을 주장하던 '보장성 강화파' 위원들이 반발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보장성 강화파 위원들이 소득대체율 상향안을 소수안이라고 표시할 바에는 보고서에서 빼달라고 주장하면서, 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빠지게 됐다. 이들 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재정계산위를 사퇴했다.
이날 김용하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은 "문구 표기 방법에 있어서 위원들 간 의견차로 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쓰지 않은 것이지 소득대체율이 논의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향후 최종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원들의 의견을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사퇴하지 않은 위원들끼리 합의를 거쳐 소득대체율 내용을 최종보고서에 담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일부 위원이 사퇴한 채 이뤄진 '반쪽' 합의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대체율 빠진 보고서에 정부 고심…국회서 논의 '지지부진' 과제
18개 시나리오를 받아 든 정부는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특히 소득대체율 논의가 보고서에 빠져 국민 설득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소득 대체율은 유지한 채 보험료 인상한다고 돼 있다 보니 국민 수용성 측면에서 이게 가능할 건인가 (고민이 된다)"며 "개혁방향이라는게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국민 설득도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부에서는 보험료율 등 모수개혁을, 국회 연금특위에서는 구조개혁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으나, 연금특위 논의는 아직 지지부진하다.
연금특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현재 한마디로 얘기하면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시간끌기로 가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결국 연금개혁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공청회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조건희 동아일보 기자는 "최악은 특정 개혁 방식이 아니라 개혁하지 않는 것"이라며 "집이 불타서 없어지기 직전인데 집을 어떻게 지을지 등을 논의하느라 20년을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금특위는 오는 4일 회의를 개최해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로드맵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연금개혁 공론화 방식, 개혁안 마련 시기 등을 얘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특위는 한 차례 연장돼 오는 10월 31일에 종료된다. 다만 논의가 속도가 붙지 않은 데다 다뤄야 할 내용도 많아 한 차례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 3월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지급시기를 늦춰야한다는 등 원론적인 내용만 담은 '맹탕'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오는 10월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서를 낸다는 계획이다. 민간자문위원회 관계자는 "오는 10월에는 위원 간 어떤 점에서 의견을 좁혔고, 어떤 점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보고서에 명확하게 담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간자문위원회는 꾸준히 토론회를 개최해 왔으나 이달 중 토론회를 마치고 개혁안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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