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추모비 인근서 우익단체 행패…거꾸로 가는 일본[간토대학살 100주년]
추모비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에 진입 시도
추모단체·시민들과 20여분 실랑이 벌여
정부발 우경화 바람, 민간 분위기에도 영향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이한 1일,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일본 도쿄도 요코아미초 공원이 우익단체의 행패로 아수라장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우익단체가 추모비 앞에서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집회를 벌이려다 일본 시민들에게 제지당하자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우경화 바람이 분 일본에서는 올해 간토대학살 행사 후원이 중단되거나, 지방 정부가 희생자 추도식을 재검토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내 한국 혐오 단체인 ‘소요카제’는 이날 오후 4시반부터 ‘진실의 위령제’ 집회를 열겠다며 요코아미초 공원에 진입을 시도했다. 일본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이날 오전 추도식을 마치자, 시차를 두고 행사를 벌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집회 예고를 본 간토대학살 추모 단체들과 일본시민 수백여명이 이날 추모비 앞을 지키고 있었다. 소요카제 측은 진입로에서 이들과 20여분 가량 실랑이를 벌인 끝에 예년에 집회를 하던 이시하라마치 위령비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스즈키 유키코 대표를 비롯한 소요카제 관계자들은 “조선인 희생자가 6000명 가량이라는 추산은 허위”라며 간토대학살 추모 단체들을 비난했다.
간토대학살 추모 단체들은 그간 소요카제의 집회가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이 단체는 그간 이 추모비의 철거를 요구하며 요코아미초 공원 내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벌여왔는데, 100주년인 올해에는 버젓이 추모비 앞에서 집회를 한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9년에는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가족을 죽이고 집을 태웠으며, 여자아이를 강간했다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를 내놓기도 했다.
소요카제의 이번 집회는 한·일관계 개선과 무관하게 우경화가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현재를 보여준다. 특히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2017년부터 간토대학살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전례를 거부했고, 100주년인 올해도 동일한 입장을 보여 논란이 됐다. 올해 2월 도의회에서는 일본 정부와 민간의 조선인 학살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도쿄도의 입장은 산하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요카제는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거부한 2017년부터 대학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한 바 있다. 또한 도쿄도 인권부는 지난해 도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열린 한 미술기획전에 간토대학살 관련 영상이 상영되려하자 ‘기획 취지에 어긋난다’며 제지했다. 당시 기획전을 연 작가는 “도쿄도가 (고이케) 지사의 성향을 헤아려 검열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비슷한 사례는 올해도 이어졌다. 이치미 류세이 니가타대 교수 등에 따르면 도쿄도 소재 ‘고려박물관’은 그간 매년 신주쿠구에서 후원을 받아 간토대지진 관련 행사를 진행해왔으나, 올해 100주년 관련 행사와 관련해서는 ‘후원할 수 없다’는 답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주쿠구 측은 “구 시책의 방향성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이 역시 고이케 지사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간토대학살에 대한 인식 변화는 도쿄도 바깥에서도 감지된다. 학살 지역 중 하나인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는 1995년부터 시 주관하에 추도식을 열어왔으나, 고바야시 테츠야 시장은 최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 지향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 나갈 때”라며 주최 형식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더 이상 시가 추도식을 주관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같은 변화는 학살 지역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또다른 조선인 학살 지역인 혼조시의 요시다 신게 시장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위령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추도식에 대해) 여러가지 목소리가 있지만, (시로서는) 추도식을 재검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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