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죽비소리와 천팔십일기도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돼
얼토당토아니한 소문 휘말려
주변 동요, 마음 흔들릴 때
얼른 죽비 들어 날 경책한다
천팔십일기도를 시작한 후 매일 새벽기도를 마칠 때 죽비를 치면서 108배 참회를 하고 있다. 맑고 짧고 준엄한 죽비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다 보면 마음은 한없이 숙연해진다. 도대체 불광사가 어떤 절인데, 여법하게 운영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참회하고 또 참회하는 마음을 죽비소리가 딱 딱 딱 규칙적으로 경책해준다.
우리 선배들은 참 현명하기도 하다.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소리로 죽비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오직 화두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를 간명한 단음에 담은, "복잡해져서는 안되느니라" "단순해져야 하느니라"라는 가르침을 담은 외마디 외침이 바로 죽비소리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오직 화두에만 집중하십시오" 같은 말은 필요 없다. 죽비의 내리침을 손바닥이 맞지만, 죽비의 명령을 철저히 따르는 이는 마음이다.
죽비는 대나무의 일정 부분을 쪼개어 틈이 약간 벌어지게 하여 만든 단순한 도구다. 죽비를 손바닥에 때리면 맑고 짧은 소리가 난다. 죽비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에서 선불교가 유행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죽비는 일반적으로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데 사용하는데, 잘못한 이를 경책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를 경책하는 데만 사용하는 2m 정도의 긴 장군죽비도 있지만, 일반 죽비도 참회의 절을 하면서 사용하면 경책의 의미를 담는다.
승가대 시절 윗반 스님들의 지시로 반 전체가 취침시간에 한 시간씩 죽비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곤 했다. 한 명이 잘못해도 전체가 벌을 받았다. 반장스님이 죽비를 때리면 40명의 무릎이 동시에 꺾였다. 많은 인원의 동작을 일치시킬 수 있는 도구로 죽비소리만 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취침시간까지 뺏겨가며 절을 하다 보면 잘못한 도반에 대한 원망이 생기려다 죽비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러나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한 도반을 내보내기도 했으니, 내 손바닥은 죽비를 더 맞아야 한다.
"딱 딱 딱" 소리를 내면서 절하게 되면 자신을 향한 냉철한 통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최근 억울한 경험을 했다. 지금 불광사는 하나의 사찰에서 사실상 두 개의 사찰이 운영되고 있는 셈인데, 지난 일요일 문도스님 한 분이 반대 측 법회에서 백중기도 의식을 진행하려고 했다. 이에 내가 그 결정을 재고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더니, 스님이 당일 일찌감치 사찰 요사채에 와서 차담하고 쉬다가 법회 장소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행하는 쪽에 못 간다는 연락도 없었다고 한다. 법회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몹시 당황했겠지만, 그렇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참 안타까웠다. 집전하기로 한 스님이 오지 않자 반대 측 행동대장을 맡은 분이 '모 스님이 주지 측의 감금으로 인해 법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카톡을 통해 널리 퍼뜨린 것이었다. 얼토당토아니한 내용이어서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이없는 내용에 동요하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얼른 죽비를 들고 손바닥을, 아니 마음을 경책한다.
천팔십일기도를 시작하기 전 108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대중과 함께하기 위해 음반을 틀어놓고 하는 것은 어떤지 고심하다가 죽비를 치면서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죽비를 치면서 절하다 보면 새벽기도에 나오는 연로한 대중이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 외롭게 거의 혼자서 죽비를 치면서 절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죽비를 선택하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다. 혼자서 외롭게 절할 때 더 깊이 뼈저리게 참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명 스님 잠실 불광사 주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집값 3년뒤 더 큰 폭풍 몰아칠 것” 전문가들이 꺼내든 숫자는 - 매일경제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인기에 브라질서 난리난 음식의 정체 - 매일경제
- “반백년 노예라고? 놓치면 백년 바보 돼”...은행마다 난리라는 이 상품 - 매일경제
- ‘국민연금 보험료율, 0.6%p씩 올려 12~18%로 상향’…보고서 공개 - 매일경제
- “선생님 꿈 접으려고요”…수도권 교대 자퇴생 5년 새 6배 급증 왜? - 매일경제
- [단독]韓 기업인 첫 우크라이나행…원희룡 장관, 재건협력대표단 20여명 동행 - 매일경제
- “하는 일마다 되는게 없네”...최고나라 꿈꾸더니 제조업마저 무너질 판 - 매일경제
- [속보] 부산 폐목욕탕 화재·폭발…소방관·공무원 등 10여명 부상 - 매일경제
- 부산 목욕탕 화재 진압 중 폭발...구청장·소방관 등 17명 중경상 - 매일경제
- “하성과 또 같이 뛸 기회가 오겠죠?” 에드먼의 바람 [MK인터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