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가장 역겨워하는 시행은?···오스카 닮아가는 부커상까지 담은 ‘문학의 역사’[책과 삶]
문학의 역사
존 서덜랜드 지음·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400쪽 | 2만4000원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 특히 역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은 무엇일까? 저자 존 서덜랜드는 “왕(클레오파트라의 경우에는 여왕)을 다른 왕으로 교체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답한다. 여러 답안을 정리했다.
<햄릿>은 ‘은밀한 암살’, <줄리어스 시저>는 ‘공개적 암살’, <헨리 6세> 3부작은 ‘내전’, <리처드 3세>는 ‘강제 폐위’, <헨리 5세>는 ‘적법한 혈통의 계승’이다.
셰익스피어는 왜 권력 교체 문제와 씨름했을까.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가 6년째 접어들 때 태어났다. 신교도를 무자비하게 처형해 ‘피의 메리’라 불린 메리 1세가 남긴 혼란의 와중이었다. 메리 1세 치하에서는 신교도가,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는 가톨릭교도가 위험했다.
셰익스피어가 권력 교체 문제와 씨름한 이유는
“셰익스피어는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두 신앙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줄타기를 했다(평생 비밀리에 가톨릭교도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작품에서 엄격히 배제했다. 종교는 말 그대로 뜨거운 주제였다.” 저자는 이 뜨거운 주제의 중심에 자리한 질문이 누가 왕위를 계승하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예정된 후계자도, 명백한 왕위 계승권자도 없었다. 저자는 “왕위 계승의 진공 상태는 위험했다. 영국에서 생각을 좀 한다는 사람은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 ‘뜨거운 주제’가 셰익스피어 권력 교체 이야기로 이어졌다는 취지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당대 잉글랜드가 배경인 작품도 쓰지 않았다. 저자는 이유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왜냐고? 그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조심성 있는 천재였기 때문이다.”
‘문학의 역사’라는 책 제목만 보면 딱딱한 내용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제목이나 대강의 줄거리는 알지만, 책을 읽거나 끝까지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문학 작품에 얽힌 역사와 개념을 쉽게 풀어간다.
그중 하나가 ‘서사시’다. 대표 서사시 중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자신이 필멸의 존재임을 받아들인 뒤 우루크로 돌아와 더 선하고 현명한 통치자가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죽을 것”이라는 내용의 이야기다. 즉 서사시란 “영웅적 행위로 문명을 건설하고 인간 본성에 남은 야만적 기질을 길들이는 이야기”다. “어떤 근본적 이상을 영웅 서사의 형태로 찬양”하는 서사시는 ‘국가의 탄생’을 기록하는 문학이기도 하다. 주로 “후대에 더 작은 나라들을 집어삼키며” 제국으로 성장하는 나라의 탄생을 기록한다. 호메로스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책은 작품과 작가, 시대사를 아우른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디포는 1719년에 책을 내놓았을 때 로빈슨 크루소라는 이름과 ‘자신이 직접 쓴’이라는 문구를 썼다. 독자를 속인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돈 불리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디포 무덤에 달러를 던져라”
크루소는 배에서 들고 온 것들을 이용해 생존하고, 섬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 자신을 섬의 ‘군주’라 부른다. “<로빈슨 크루소>를 제국에 대한 알레고리로, 그리고 그 무렵 지구의 많은 지역을 제국의 재산으로 점령하기 시작한 영국에 대한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리본슨 크루소>는 “재산과 재산을 불리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기록자인 대니얼 디포의 무덤에 파운드 주화와 달러 지폐를 던져야 할 것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도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미국 소설의 전형으로 만드는 것은 “끝없는 탐색과 자연의 평정(그것이 파괴를 뜻할지라도), 그리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끊임없이 재생 중인 이 새 나라에 연료를 보급할 자연자원을 향한 탐욕”이다. “고래를 왜 사냥하는가? 취미 활동이 아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고래의 지방층에서 추출되는 기름이 전등과 기계와 아주 많은 제조 활동에 필요하기 때문에 고래가 멸종 위기에 이를 때까지 사냥했다.”
저자가 책의 여러 장을 오가며 자주 다루는 작가는 찰스 디킨스다. “여전히 매년 100만 권씩 소설이 팔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가 그 말고 또 있을까?” 스테디셀러라서 위대한 건 아니다. “디킨스의 소설은 사회 변화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는 소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제대로 이해한 최초의 소설가였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마음’먹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보다 더 나아졌고, 그것은 부분적으로 찰스 디킨스의 덕택이기도 하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이해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빈민층이 공공지원을 받는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 신구빈법을 비판한다. “사회의 ‘나태한’ 구성원들이 유용한 일자리를 찾도록 자극을 주어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도록”하는 목적으로 만든 법이다. 디킨스는 “어린아이가 고아에서 ‘구빈원 소년’으로, 미성년 굴뚝청소부로, 결국 범죄자의 견습생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영국의 이 잔인한 법을 비판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 여러 작가의 장단점, 한계를 아우른다. 디킨스를 두곤 “최고의 남편도, 최고의 아버지도 아니었다”며 20년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열 명의 자녀를 낳은 아내를 쫓아낸 뒤 스무 살 어린 사람과 결혼한 일도 적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유대인 등장인물 페이긴을 두고 “디킨스가 역겨운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에 영합했음을 보여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 일을 후회한 디킨스는 성자 같은 유대인인 리아를 <우리 모두의 친구>에 등장시켜 잘못을 만회하려 했다.
책은 극의 역사도 함께 다룬다. 중세 시대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연극이 거리로 나갔다. 영국에서는 그런 연극을 ‘신비극(mystery plays)’이라고 불렀다. 영국에서 ‘mystery’는 ‘직업’이나 ‘직종’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배우들은 직종과 관련된 성경 속 일화를 선택했다. 못을 만드는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이야기를, 바지선 선장과 선원들은 노아와 홍수 이야기를 상연했다. 대중적인 종교 의례에서 진화한 신비극은 200년 동안 번성했다.
저자는 그 무대가 거리를 차지한 수레의 행렬이건 현대적 극장의 무대건 간에 “페이지에 인쇄된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대 위의 문학에 반응한다는 것”을 말하려 이 역사를 끌어온다. “독서는 가장 사적인 활동에 속하지만 극장에서 우리는 문학을 공적으로, 공동체로 소비한다. 집단으로 경험하고 반응한다. 그것이 연극이 주는 즐거움의 큰 부분이다. 연극을 볼 때 우리는 사람들 속에 있다.”
이 문학 안내서는 ‘정치적 올바름’과 함께 ‘여성주의’ 시각을 견지한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모방)’와 ‘카타르시스’(저자는 ‘감정의 완화’로 번역한다) 같은 유명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빼놓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실제로 살았던 고귀한 태생의 남자들의 개인적 삶을 다루어야 한다” “노예나 여성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든 것을 복음서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여성이나 노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관점이라든가 국가의 역사에서 왕과 왕비, 귀족만 중요하다는 정치적 관점에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 스스로 표현할 권리를 갖도록 한 사람, 울프가 헌사한 애프러 벤
밀턴의 <실락원> 중 아담과 이브에 관한 묘사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는 사색과 용기를 위하여,/ 그녀는 부드러움과 다정하고 매력적인 우아함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니,/ 그는 하느님만을 위하여,/ 그녀는 그 안의 하느님을 위하여”. 저자는 “현대의 독자가 가장 역겨워하는 시행”이라고 말한다. 예술 장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삽화가들은 밀턴의 묘사를 따라 아담은 경건하게 하늘을 우러러보고, 이브는 그런 아담의 얼굴을 흠모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전통적으로 그렸다.”
여성 작가들도 다른 문학사에 비해 많이 다룬다. 그 중 한명이 <오루노코>를 쓴 17세기 작가 애프러 벤이다. 극작가로 일한 최초의 여성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헌사했다. “(애프러 벤의 무덤에) ‘여성 모두 꽃을 놓아야 한다. …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권리를 갖도록 한 사람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울프도 한 장을 따로 빼 다룬다. <자기만의 방>을 두곤 “타오르는 분노가 가득하다. 그리고 수천 년간 문학을 불균형하게 만든 부당한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단이 가득하다. 여성의 목소리는 더 이상 침묵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하인이 늘 청소했다. 이 하인들을 다룬 흥미로운 전기가 2010년에 출간됐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에는 대단히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여성의 생식권을 통제하려는 종교적 압력이 반복되어왔다. 여성의 생식권은 대체로 I960년대 중반, 애트우드의 세대가 주창하기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얻어 낸 것이다. 애트우드가 제기하는 질문은 25년 전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그런 이유로 <시녀 이야기>는 여전히 울림이 있다.”
저자는 현재의 문학 제도의 근원도 찾아간다. 그중 하나가 ‘저작권’이다. ‘독창적인 것’ 즉 현대 표현으로는 ‘고유한 지적 창작물’이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건 1710년 영국 의회가 내놓은 ‘앤 여왕법’이다. 이 법 전문은 “근래의 인쇄업자와 서적상을 비롯한 사람들이 저자나 소유주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책을 비롯한 글을 인쇄하고 재판하고 발행하거나 그런 일을 빈번하게 도모하여 저자와 소유주와 그 가족에게 매우 큰 해를 입히고 파산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잦은 까닭에, 장래에 그런 관행을 예방하고 학자들이 유용한 글을 짓고 쓰도록 장려하기 위하여”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최초의 저작권법은 ‘영구적 소유권’의 위험을 예견하곤 작품의 창작자나, 창작자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인 사람은 제한된 기간 동안만 그 권리를 소유하도록 규정했다. “그 뒤로는 ‘공공 영역(public domain)’이라 불리는 곳으로 들어가서, 모두의 것이자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잔재미가 많다. 영화 <반지의 제왕> 한두 편 정도만 본 이라면 원작자 J R R 톨킨을 그저 소설가로 여기는데 고대와 중세 영어를 연구한 당대의 문학비평가다. 톨킨이 처음으로 자신의 창작 계획을 이야기한 것도 옥스퍼드의 어느 주점에서 한 무리의 동료 학자와 함께 있을 때라고 한다.
레버틀러의 흑인 살해 이야기는 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버트 브리지스는 1913~1930년 동안 계관시인 자리를 지켰다. T S 엘리엇과 같은 시기 작품을 냈다. 브리지스의 <미의 유언>은 엘리엇의 <황무지>보다 1000배 많이 팔렸다. 지금 브리지스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브리지스의 시는 문학의 휴지통에 들어가 있다. <황무지>는 살아남았고 시가 읽히는 한, 후대 독자들의 책장에 꽂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은밀한 취미-베스트셀러와 돈벌이 상품’에서 이 일화를 전한다. 그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판매 기록일 뿐 아니라 일종의 ‘군중 행동’을 부추겨서 판매를 자극한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빨리 왔다가 빨리 사라진다. 대체로 ‘오늘의 책들’”이라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을 읽은 사람이 한 명이라면 영화만 본 사람은 100명쯤” 된다.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지 않다. KKK에 대한 호의적인 언급은 누그러뜨렸고, 주인공 레트 버틀러가 백인 여성을 모욕한 해방 노예를 살해하는 이야기는 뺐다
저자는 ‘위험한 책 문학과 검열’도 한 장으로 이룬다. “권력자들은 어디에서나, 역사상 어느 시기에나 늘 책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책은 당연히 불온하고, 국가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고 여겼다. 플라톤이 이상적 국가에서 시인을 모두 내쫓아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천로역정> 대부분을 감옥에서 쓴 존 번연부터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굴라크에서 8년을 갇힌 솔제니친까지 권력과 검열의 역사를 다룬 저자는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의 다음 선언을 인용한다. “사람을 죽이듯 좋은 책도 죽일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형상인 이성적 피조물을 죽이는 것이지만, 좋은 책을 죽이는 자는 이성 자체를 죽이는 것이다.”
저자 존 서덜랜드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다. 1999년과 2005년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문학상 제도에 관해서도 썼다. “문학상 제도는 승자와 패자라는 흥미진진한 요소를 문학에 들여왔다. 문학을 일종의 스포츠 경기장이나 검투경기장처럼 만들었다.…시상식이 해가 지날수록 오스카상 시상식을 닮아간다. 레드카펫만 없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도 조만간에 생길지 모르겠다.”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부커상을 두고도 거침없다. “부커상은 얼마 전부터 한 헤지펀드의 후원으로 상금을 수여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름을 맨부커상(책이 나오고 다시 부커로 바뀌었다)으로 다시 지었다. 앵글로색슨다운 실용주의 덕택에 이 상의 관리자들은 자본주의와 거래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자본주의와 거래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 없는 부커상
부커상을 받은 존 버거가 수상 연설에서 ‘식민지를 착취하는’ 후원자들을 비난하고, 상금의 절반을 흑인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블랙팬서 운동에 기부한 일도 적었다.
문학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어쩌면 조급함 때문일 것”이라며 “조지 오웰이 언급했듯, 어떤 문학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는 진정한 심판관은 시간”이라고 했다. 문학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 잘 판단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두고 “이 책에 담을 수 있는 역사는 기껏해야 똑똑하게 고른 샘플 정도”라고 했다. “이 작은 역사는 매뉴얼(이걸 읽어!)이 아니라 조언”이다. “아마 당신은 (문학의 역사에 소개한) 이 책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정도에 해당하는 책”이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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