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하늘엔 천사가 부족하다
어쩌다 보니 강아지 두 마리와 같이 산다. 하나는 푸들 늙은 개(老犬)고, 다른 하나는 코카푸(코커스패니얼과 푸들 믹스견) 젊은 개(壯年犬)다. 소설가 김경욱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연이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필연"이니, 결국 필연적으로 그렇게 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과학자-'개는 천재다'를 쓴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 미국 듀크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가 인간을 선택했다고도 했다.
주말에 가장 좋은 시간은 낮잠 잘 때다. 카우치에 누우면 한 놈은 머리 위에, 다른 한 놈은 옆구리에 붙어 같이 존다. 껌딱지같이 곁에 늘 붙어 있던 또 다른 한 놈은 3년 전 노환으로 죽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게 장년견 코카푸다.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코를 심하게 곤다. 고견(故犬)이 된 그놈도 그랬다. 잠자리를 잡기 위해 내 배 위를 폴짝 뛰어 지나가는데, 밟고 갈 때도 많다. 노견은 가벼워 괜찮지만, 장년견은 묵직하니 타격감이 있다. 고견은 제일 가벼웠다. 밥을 먹을 때 장년견은 노견에게 첫술을 양보한다. 노견은 장년견에게 마지막 한 입을 남겨 놓는다. 고견은 손(앞발)으로 한술 한술 떼어 먹었다. 가끔 장년견이 그 장면을 복기한다.
요즘 개들은 수명이 12~15년쯤이라고 한다. 간혹 스무 해를 사는 친구들도 있다지만, 흔치 않다. 우리 집 고견은 열두 살 생일을 보내고 보름 뒤에 떠났다. 소설가 박에피가 단편 '늙은 개와 여행하기'에서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 힘을 풀며 품에 안기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던 저 말랑말랑한 몸이 이제는 귀 어둡고 눈멀어 냄새와 분비물만 하루 종일 뿌리는 존재가 되었다"고 탄식했던 그 광경 뒤의 일이었다. 수명이 짧으니, 보내는 일-펫 로스(Pet Loss)라고 부르는-은 반려인의 고된 일이 되었다. 한번 보내면,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 메울 수 있는 건, 다른 반려동물밖에 없다고도 한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따진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는 뒤섞여, 어지간해선 구별할 수 없다. 심신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시 '벤저민을 붙들고'-시집 '개를 위한 노래'에 실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리고 당신,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킨 당신은/ 참을성 있고 평화를 사랑하긴 하지만,// 틀려./ 그리고 당신은 의기소침하지.// 맑고 초롱초롱한 눈은 당신이 아닌/ 개의 눈이지."
마크 트웨인은 소설 '어떤 개 이야기'에서 아예 개의 목소리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지혜롭고 선한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보내졌다고 말했다. 불평하지 말고 우리 의무를 수행하며, 그 목적을 찾는 데 목숨 걸고 덤벼야 하고, 다른 이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도록 살아야 하며, 절대로 그 결과에 대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우리 강아지들과 낮잠을 잘 것이다. 일에, 뉴스에, 진짜 가짜에 뒤틀리고 상처 입은 나는 강아지들이 코 고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잠에 빠질 것이다.
태초에 하늘에 천사가 많이 있었다. 그들은 강아지가 되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하늘에는 천사가 부족하다.
[김영태 코레일유통(주)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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