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냉정한 광신자들, 영향력·자리·계급을 추구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3. 9. 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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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믿었던 광신자에 관한 명언들이다.

여전히 이 명언에 들어맞는 광신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주류는 아니다.

이렇게 동질적인 집단 내에선 과격한 발언을 할수록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유지·강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광신자들이 양산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광신자는 진리와 무관하게 어떤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위세가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을 때 그 집단 내에서의 인정투쟁과 이익투쟁의 산물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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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신념이 그를 광신자로 만든다"(프리드리히 니체), "광신자의 최악은 그의 진실성이다"(오스카 와일드), "광신은 목적을 잊은 채 노력을 배가할 때에 나타난다"(조지 산타야나), "광신자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주제를 바꾸지도 않을 사람이다"(윈스턴 처칠), "광신자들은 대부분 창조적이지 못한 지식층에서 나온다"(에릭 호퍼).

한때 내가 믿었던 광신자에 관한 명언들이다. 여전히 이 명언에 들어맞는 광신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주류는 아니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광신 또는 광신자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공론장을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성한 가운데, 이른바 '집단사고' '집단극화'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등과 같은 현상이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ixabay

특히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가 중요한데, 이는 어떤 문제에 관한 집단 토의에 참가한 후에 구성원들이 토의 전보다 더 모험적인 의사결정들을 지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집단 토의 속에서 나온 주장들을 들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구성원들의 처음 입장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유들보다도 찬성하는 이유들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처럼 정보를 임의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런 집단극화 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이렇게 동질적인 집단 내에선 과격한 발언을 할수록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유지·강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광신자들이 양산된다. 처음엔 내부 경쟁에서의 비교우위를 위해 숙성되지 않은 기회주의적 발언들을 해대지만,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광신자 연기를 해야 하며, 그 연기가 축적되면서 광신을 내면화하게 된다.

홀로 존재하기도 했던 과거의 광신자들과는 달리 오늘날의 광신자는 철저히 집단적이다.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광신자가 된 사람은 그 진리가 깨지거나 무너졌을 때 한동안 고집은 피울망정 서서히 광신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광신자는 진리와 무관하게 어떤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위세가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을 때 그 집단 내에서의 인정투쟁과 이익투쟁의 산물로 태어난다. 따라서 집단이 유지되는 한 광신 상태는 지속된다.

그런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판하기 쉽다. "저렇게 자주 거짓말과 실언을 일삼다니, 저 사람은 이제 끝났구먼!" 천만의 말씀이다. 집단의 목적은 진리도 아니요 국리민복도 아니다. 오직 자기 진영 또는 부족의 승리일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은 승리를 향한 열망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敵)들에게 지저분하게 굴수록 오히려 진영 내 인기는 치솟는다.

연예인에게 소속 기획사가 필요하듯이, 이젠 광신자가 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은 소속사 역할을 하는 진영이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좌우를 막론한 법칙은 이렇다. "중도는 설 땅이 없죠. 좋든 싫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 발언과 영향력, 자리와 계급을 보장받거든."(조선일보, 2016년 2월26일자) 현재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팬덤정치 체제하에선 팬덤의 열화와 같은 지지가 영향력·자리·계급을 결정하기 때문에 팬덤의 피를 끓게 만들 수 있는 발언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 수요 측면에선 '뜨거운 광신'이지만, 공급 측면에선 '냉정한 광신'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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