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마켓관찰] 강한 신념은 좋은 의사결정의 적이다
왜곡된 시각으로 오판 유도
밀어붙여야 할 땐 따로 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신념이 가진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믿고 반대에 흔들리지 않으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훌륭한 덕목으로 꼽는 일이 많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믿고 사회를 바꿔간다는 마음가짐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념은 좋은 의사결정의 적이며, 의사결정권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도 있다.
결정은 현재 상황에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인식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만약 인식이 잘못되고 판단 또한 그르면 잘못된 해결법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는 뜻의 '지피지기 백전불태'도 판단과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신념이 의사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신념은 상황과 문제에 대한 판단을 왜곡시키기 좋다.
찰스 로드와 리 로스, 마크 레퍼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사형제 효과를 입증하는 데이터와 사형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데이터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준 데이터가 실험을 위해 가짜로 조작한 자료란 점이다. 이때 두 그룹의 학생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 데이터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신뢰했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학생은 효과를 입증하는 데이터를 제대로 된 연구라고 받아들였지만, 반대 데이터에 대해서는 연구가 엉망진창이며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학생은 정확히 정반대 모습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인간은 신념과 배치되는 사실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강화할 증거를 찾기 위해 애쓰며 오직 자신의 신념과 합치되는 정보만 수용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떠한 사실과 정보가 제시됐을 때 우리는 오직 신념에 부합한 사실만 제한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결국 상황 인식과 판단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런 왜곡된 인식과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 좋은 결정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물론 선택과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은 그러한 왜곡된 상황 인식과 판단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변덕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운은 지속될 수 없으며 결국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우리의 신념이 우리를 속이는 것을 막기 위해선 하나의 신념을 강하게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신념을 가지고 각각의 신념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신념은 공존할 수 없기에 이건 그냥 신념을 내려놓으란 말이나 다름없다.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상황을 다각도로 인식하며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과 판단 과정에서 옳다고 믿는 신념은 장해가 될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줏대가 없는 것'보다 신념이 좋은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보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
물론 강한 신념이 필요한 때도 있다. 냉철한 상황 인식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고 판단해 결정을 내린 후엔 설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올바르다면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한다. 바로 이때 신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신념을 내려둬야 할 인식과 판단에서 신념을 강하게 적용하고, 그렇게 왜곡된 인식과 판단으로 너무나도 쉽게 결정을 내린다. 많은 사람이 좋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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