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생 서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2023. 9. 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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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과거를 가지고 있다. 반짝이는 추억이 있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으며, 영광스러운 시간이 있고, 수치스러운 순간도 있다. 눈앞의 일처럼 생생히 다가오는 경험도 있고, 아스라해 윤곽선조차 희미한 사건도 있다. 어떤 일은 덮어서 잊고 싶기도 하고, 어떤 일은 드러내서 영원히 기념하고 싶기도 하다. 과거를 떠올려 오늘에 되새기는 회상이란 지극히 신비로운 경험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지나친 무수한 사건 중에서 특정한 몇몇 일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일까?

'에크리'(새물결 펴냄)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이 전(前)미래 시제로 과거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전미래는 프랑스어에 있는 한 시제 표현으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미 완료됐을 것으로 여기는 동작이나 상태를 기술할 때 사용한다. "내일 오후에 나는 이미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고 말할 때 전미래 시제를 쓴다. 우리는 과거를 말할 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 지금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서다.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일도 흥미롭지 않다. 이미 이뤄진 일은 앞날의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건 시간의 긴 흐름 속에서 지금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일뿐이다. 미래가 현재에 빛을 던지고 과거를 끌어낸다. 한마디로 우리는 언제나 미래에 되어야 할 나, 미래에 이뤄질 나라는 관점에서 과거를 고쳐 쓴다.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지에 따라 과거가 달라지는 셈이다. 희망이 머나먼 영광을 떠올리게 하고, 뉘우칠 만한 후회도 생각나게 한다.

진리는 언제나 미래에서 온다. 과거에 얽매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이룰 미래는 지나간 실패를 닥쳐올 성공을 위한 고난으로 만들고, 뼈아픈 슬픔을 앞날의 환희를 위한 시련으로 만들며, 과거의 잘못조차 미래의 영광을 위한 방황으로 만든다. 미래가 과거를 생성한다. 앞으로 무엇이 되는지에 따라 과거는 얼마든지 변한다.

거꾸로 말해 추억은 현재의 욕망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과거를 어떻게 말하는지에 따라 그가 꿈꾸는 미래, 그가 되고자 하는 자아상도 알 수 있다. 자기소개서를 읽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서사 내용이 사실 그대로여서가 아니라 그가 되고 싶은 나를 선연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꿈을 꾸는 사람이 인재다. 어디서 베낀 듯 빤한 이야기를 적어내는 사람은 그저 그런 인간밖에 될 수 없고, 생생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일을 이룩할지 모른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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