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의 문화 이면] 자연문학과 감각의 재생
도시인이 놓쳤을 숱한 이야기
이 목록에 인간 삶을 더해
우주라는 가없는 자연을 천명
인간의 잃어버린 감각 깨우는
자연문학이 위대해지는 순간
도시에 산다는 건 거대한 보호막 속에 사는 일과 같다. 거친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셈이지만 자연의 생생함에 대한 감각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자연문학은 줄어드는 감각을 끄집어 올리는 매개체가 돼줄 수 있다.
자연문학이란 뭘까. 자연을 소재로 하되 그 안에 숨 쉬는 생명의 논리를 시적 깊이로 묘사해내는 글이다. 아마존 정글을 헤매는 탐험기나 높이 20미터 이상의 거목(巨木)을 만나본 식물 연구가, 소와 돼지 같은 대형 가축에 특화된 수의사의 작업 일지 모두 자연문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 소개되는 자연문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특정 지역이나 동식물에 편중돼 있다.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나무와 식물 이야기로, 도시 근교 자연부터 깊은 밀림까지 모두 다룬다. 개와 고양이, 새, 곤충 같은 동물 생태 이야기, 어류와 해양을 다룬 자연문학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양 생태계를 추리소설 구조에 녹여 성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산이나 사막, 오지 탐험류의 자연문학도 찾아보면 꽤 읽을거리가 있다. 히말라야나 낭가파르바트 등 인간이 극한의 환경에서 모든 걸 내던지고서야 얻어낸 통각(痛覺)을 그려낸 산서(山書)의 연대기를 두 손 가득 꼽을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나 찰스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는 자연을 소재로 해 과학으로 나아갔는데, 이런 종류의 책에도 자연문학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많다. 널리 읽혀온 자연문학의 또 다른 유형으로 은둔자의 에세이를 들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비롯해 고전급 책도 있지만 귀농자와 귀향자의 평범한 일기책도 많다. 읽어보면 소소한 내용 속에 자연의 회복력과 치유력을 느끼게 해준다.
최근 은둔자 유형에 속하는, 차원이 다른 자연문학을 만났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내 황량한 사막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작가의 에세이다. 과거 서역으로 불렸던 신장(新疆)은 '사기' 흉노열전의 주 무대이며 지금은 소수민족 위구르족의 본거지다. 장대한 톈산산맥이 거쳐 가는 중앙아시아 우루무치가 수도이며, 그 아래로 북부 중가리아와 남부 타림분지로 양분돼 중국 전체 영토 중 10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광대한 영역이 펼쳐진다. 그간 몽골 초원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자연은 다큐멘터리의 주요 소재였다. 외부 관찰자 시선에 포착된 토착인의 삶은 신비로운 토템으로 가득해 그곳에 가보고 싶은 로망을 자극해왔다. 그런데 평생 그곳에서 살아온 작가가 직접 쓴 글은 외부인이 발췌해 재구성한 아름다움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내가 이 책에서 만난 건 '달나라의 감각'이다. 23년 전 나는 티베트에서 6박7일 일정으로 네팔 국경을 가로질러 넘은 적이 있다. 캄캄한 밤하늘과 어두운 대지에서 마치 달처럼 울퉁불퉁한 혹성을 건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이번에 되살아났다. 지금껏 읽었던 어떤 중국 농촌문학의 향토색과도 달랐으며, 지리적·생태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몽골 초원의 삶을 다룬 '늑대 토템'의 세계와도 달랐다. '늑대 토템'에서 가장 놀랐던 건 늑대 무리 10여 마리가 수적으로 10배 이상인 가젤 무리를 치밀하게 계획 사냥하는 장면이었는데, 이런 종류와는 전혀 다른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바람, 땅, 모래, 집, 나무, 개, 나귀, 개미, 담벼락, 옥수수에 대한 흘러가는 이야기였다.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그 이야기들은 자연을 인간의 삶 속으로 녹여내지 않는다. 저자는 이 목록에 인간까지 추가해 각각이 우주라는 가없는 자연의 구성 요소임을 천명한다. 나귀의 짝짓기, 개미의 이사, 바람과 담벼락의 대결 등이 모두 의인화돼 있는데, 읽다보면 일부러 인간화해 표현한 게 아니라 실제가 그렇다.
한문 공부에서 10년이면 문리(文理)가 트이고 20년이면 속문리가 트인다고 한다. 속문리란 한문과 자신이 진정한 소통 관계에 들어선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50년간 한자리에서 지독하게 반복적으로 겪어낸 이가 틔워낸 자연에 대한 속문리는 3년간 죽어 있는 고목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경이롭다. 이럴 때 자연문학은 위대해지고,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을 일부나마 회복하는 데 톡톡히 기여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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